[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26일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에서 개최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는 금융당국이 향후 어떠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의 '칼'을 휘둘러 나갈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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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에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가 개최됐다. /금융위원회 |
약 90분간의 회의 종료 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백브리핑에서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의 '재원'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임 위원장의 발표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종합해 Q&A 방식으로 정리해 본다.
구조조정, '무슨 돈'으로 하나?
현재 구조조정 문제에서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들이 중요 당사자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경영 상황이 악화된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여러 회사들을 자회사로 편입해 주채권은행으로서 이들을 정상화 시켜야 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임 위원장은 26일 브리핑에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기초체력'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정책금융 수행을 위해 기업투자촉진프로그램에 2조원 현물출자, 해양보증보험 150억 원 출자지원 등 재원확충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임 위원장은 정부와 중앙은행과의 공조를 암시했다. 정확히는 "국책 금융기관이 자회사에 대한 철저한 자구노력을 하는 한편으로 기재부‧한은‧산은‧수은 등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적정 규모의 자본 확충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은행의 지원 참여 방식은?
기재부‧한은‧산은‧수은 중에서 산은과 수은은 지원을 받는 입장이다.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지원을 해주는 입장인 기재부와 한국은행의 스탠스다. 이 중에서 기재부는 여‧야‧정 협의체 채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궁금증을 자아낸 것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지원 방식이다. 발권력부터 통화정책 결정능력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한국은행이 어디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금융당국을 도울 것이냐다.
임 위원장은 일단 "금융위는 재정담당인 기재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액수나 지원방법에 대해서는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바꿔 말하면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방안은 없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입장은?
한국은행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날 임 위원장의 브리핑과 관련해 "(금융당국에서)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이 말한 '협의체' 참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지만, 이미 요청사항을 전달했다는 뉘앙스로 말한 임 위원장의 발언과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단, 임 위원장 또한 한은 지원에 대해서는 "어느 날 갑자기 정해지는 게 아니고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정해지는 것들이 있으므로 현 단계에서 미리 정해놓고 말하기 어렵다"고 선을 긋기는 했었다.
기재부‧한은과 정확히 언제쯤 만나 논의를 진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임 위원장은 '조만간'이라고만 표현했다.
'한국형 양적완화' 추진되나?
한국은행의 지원 참여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키워드는 '양적 완화'다.
4‧13 총선 직전 새누리당의 경제공약으로 발표돼 화제가 된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시중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돈을 푸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 문제와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플랜은) 새누리당의 양적완화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 "한국은행이 산금채를 구매해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현재 필요한 건 유동성이 아니라 손실 분담"이라고 말하면서 "이것과는 전혀 별개"라고 말했다.
대신 임 위원장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국책은행의 자본력 '문제였다. 'BIS 비율'로 대표되는 건전성 지표를 현재 정도로 유지하면서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채권단의 손실 분담과 자본 확충이 필수라는 골자였다.
국책은행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이날 브리핑에서 임종룡 위원장은 현재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14.2%와 10.0%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장의 어려움은 없다고 보고 있다"면서 일단은 국책은행의 자체적 노력이 우선이라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국책은행이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산업은행은 총여신 128조9000억 원 중 7조3000억 원이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이다. 산업은행은 1998년 이후 최대 규모인 1조895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작년에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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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위원장은 "금융위는 재정담당인 기재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
수출입은행 역시 총여신 124조8000억 원 중 4조원이 부실채권이다. 이는 심지어 대우조선해양 등 '정상 여신'으로 분류된 조선‧해운사 여신은 제외된 수치다.
정책금융기관 한 관계자는 "분명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기는 하다"면서 "국책은행 여력만으로 구조조정 문제에 대응하기는 당연히 역부족이기 때문에 자본 확충 대책이 대대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낙 여러 기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보니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관 간의 '엇박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최근 산업은행은 수출입은행의 건전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LH 주식 5000억 원어치를 현물출자하려다 약 500억 원의 법인세를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산은의 장부가와 수은의 장부가가 달라 세법상 시세차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인데 기재부와 금융위가 원칙론만 고수하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며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드러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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