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이 '입장 정리'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은행 주요 인사가 기자들이 입회한 공개 석상에서 발언하는 경우 거의 반드시 '양적완화'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한은을 비롯한 국책은행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데다, 새누리당이 4‧13 총선 직전 '한국형 양적완화'라는 공약을 꺼내 들어 커다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약의 핵심내용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여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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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은행은 이주열 총재나 임원급 인사들의 발언 뉘앙스와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는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양적완화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데다, 더불어민주당마저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상황이라 한국은행의 입장이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공개석상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이에 한은은 이주열 총재나 임원급 인사들의 발언 뉘앙스와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은행도 완화기조를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국형 양적완화'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한은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에 대한 의견을 말한 것일 뿐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추가입장을 발표해 선을 그었다.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의미로서의 '한국형 양적완화'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총선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한은의 '뉘앙스 조정'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이주열 총재가 서울국제금융포럼 축사에서 주요국 양적완화에 대해 언급한 뒤에도 한은 측은 추가입장을 발표해 "한국판 양적완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다.
같은 달 29일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기자설명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성장에 필요한 과제라는 점에 공감하지만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시급하다는 점에 대해 견해가 다를 수 있다"며 "아무리 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쪽이 중앙은행의 기본원칙에 부합한다"고 발언한 뒤에는 한은이 양적완화에 부정적인 스탠스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자 한은은 다시 추가 입장을 발표해 "한국은행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발권력을 통해 국책은행 자기자본 확충에 나서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한국은행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발표해 "한국형 양적완화는 어불성설"이라면서 "양적완화라는 어설픈 말장난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고 국채발행 등을 통해 순리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라"는 입장을 지난 달 29일 공표했다. "정부의 발권력 동원 시도를 끝까지 저지할 것"이라는 강력한 입장을 내놓은 한은 노조까지 논쟁에 가세하면서 '양적 완화'를 둘러싼 한은 안팎의 방정식은 날이 갈수록 계속 복잡해져만 가는 모양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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