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돌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양적완화가 과연 '원칙'에 맞는 것이냐는 반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2일 AD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는 이주열 총재는 출국에 앞서 소집된 집행간부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 관계기관과 추진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의 이번 발언은 사회 각계에서 제기된 한국은행의 '역할론'에 대해 이 총재가 '응답'을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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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에 돌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양적완화가 과연 '원칙'에 맞는 것이냐는 반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 |
새누리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꺼내든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 가속화 되는 분위기다. 이 가운데 이주열 총재를 포함한 한국은행의 주요 인사들이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발언을 할 때마다 주요 언론은 해당 발언을 '양적완화'와 연관 짓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기업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양적완화에 돌입하는 것은 본분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일엔 다름 아닌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이 논쟁에 가담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 한국은행을 이끌었던 박 전 총재는 이날 오전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특정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양적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박 전 총재는 금고(金庫)의 비유를 들었다. "한국은행의 역할은 금고를 지키는 금고지기와 같다"고 언급한 그는 "5년마다 바뀌는 정부 권력이 금고 열쇠를 갖고 있으면 여러 남용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그 열쇠를 갖고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은의 역할을 설명했다.
이어서 "중앙은행이 금고 열쇠를 사용할 때는 준칙이 있다"고 짚은 그는 "그 사회의 보편적 목적을 위해서 금고 열쇠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해운‧조선업 등의 특정산업 구조조정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한국형 양적완화에 돌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덧붙여 박 전 총재는 "정부가 말하는 한국형 양적완화의 뜻은 금리는 손대지 말고 한은이 돈을 찍어서 부실기업 정리자금을 대라는 것인데,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양적완화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행을 압박하고 있는 양적완화 주장이 '원칙'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는 목소리는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금융학계 한 교수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양적완화에 대해 "한국은행의 영향력은 전국적인데 그 영향력을 이용해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특정산업을 위한 것이라는 게 미스매치"라면서 "할 때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예외성과 당위성을 충분히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손꼽히면서 양적완화 공약의 밑그림을 그린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역시 한국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양적완화 공약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반론 역시 팽팽해 양적완화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잦아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금융계 한 고위관계자는 "결국 혈세인 한국은행의 '총알'을 이용해서 지원하겠다는 산업이 사실상 '사양산업'이라는 점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 여타 산업의 생산성도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단기적이고 불확실한 효용만 남긴 채 끝날 확률이 높아보인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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