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이체' 구실로 체크카드‧비밀번호 양도했다 '대포통장 명의인' 등록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지난 4월 대구에 거주하는 21세 A씨는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통해 어느 다국적 미디어기업 B사에 구직을 신청했다. 평소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한 회사명이라 별다른 의심 없이 절차를 진행했다. 며칠 후 B사로부터 "합격자 중 1명이 사정상 빠지게 되면서 A씨가 합격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채용공고 상의 전화번호와 합격 통보 전화번호가 달랐지만 크게 의심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B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였다. 영화에서 접했던 익숙한 사명 역시 지난 2014년 사명 변경된 이후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사명이 세간에 익숙하다는 점을 악용한 사기범이 의도적으로 이미 소멸된 법인명을 사용한 것이다.

   
▲ 피해자가 사기범으로부터 요구 받은 '이력서' 양식 /금융감독원


사기범은 A씨의 주민등록번호를 확보하기 위해 이력서 제출을 요구했고, 동시에 급여계좌, ID카드 등록 목적을 빙자한 거래은행, 계좌번호 등을 문의했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거래하지 않는 은행'이라는 핑계를 대며 대포통장으로 사용이 어려운 농협은행, KEB하나은행, 기타 지방은행 통장은 거절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어서 사기범은 A씨의 체크카드 확보를 위해 "회사 보안상 체크카드를 이용해 출입증을 만들고 있으므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유도한 뒤 택배를 통해 체크카드를 보낼 것을 요청했다. A씨는 결국 카드를 보냈지만 발송 이후 회사가 전화를 받지 않아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 통장내역을 확인했다. 

그 결과 출처불명의 자금거래가 발생한 사실을 깨닫고 수사기관에 B사를 신고했다. A씨와 같은 피해자들은 여럿 존재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된 상태였다.

최근 금융감독원(원장 진웅섭)에는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의 채용 공고를 보고 구직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체크카드를 양도했다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록됐다는 신고가 다수 접수됐다고 3일 밝히며, 취업을 미끼로 한 보이스피싱에 대한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올해 1분기 중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센터'에 접수된 사건 건수는 총 51건이다. 주3회 꼴로 이와 같은 유형의 사기사건이 접수된 것이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김범수 팀장은 채용 공고를 이용해 구직자로부터 체크카드(비밀번호)를 편취하는 사기 수법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구직난으로 인해 채용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고용주의 요구사항을 거부하기 어려운 구직자의 절박한 심리를 사기범이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대포통장 근절대책 실시와 처벌 강화로 대포통장 확보수법도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금감원은 기업의 정식 채용 절차에서는 절대로 계좌비밀번호(공인인증서, OTP 등)와 체크카드의 양도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이를 요구하는 것은 보이스피싱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급여계좌 등록은 실제로 취업한 후에 이뤄지는 것으로, 등록을 위해서는 본인 명의 계좌번호만 알려주면 된다.

또한 금감원 관계자는 구직자들에 대해 "취업하고자 하는 업체에 대해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한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앞서 피해사례로 언급된 B사의 경우 조금만 세심하게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면 이미 존재하지 않는 법인명을 알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에게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양도해선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본인의 통장에서 자금을 대신 인출‧이체해 준 사람도 범죄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A씨와 기타 피해자들의 경우처럼 대포통장 명의인이 되어 '금융질서문란행위자'로 등록되면 각종 금융거래가 제한되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으므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금감원은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경우 지체 없이 금감원 불법사금융피해센터(국번 없이 1332)에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최근 주요 취업 포털과의 업무 협조를 통해 취업 사이트에 사기피해 예방을 위한 배너 광고를 게시한바 향후 각 대학의 교내 신문이나 대학생 대상 언론매체 등을 통해 취업사기 예방을 위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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