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어선이 충돌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의 해상 안전 관리에 여전히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여수는 유조선과 어선 등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어서 이 같은 충돌 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7일 주요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연근해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현실이 확인됐다.
5일 오후 10시 19분께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 동쪽 10㎞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4t급 새우 조망 어선 S호(국동 선적)와 6만2천t급 유조선 A호(싱가포르 선적)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어선 승선원 2명 가운데 선장 강모(58)씨가 해상으로 추락해 숨졌다. 어선은 사고 충격으로 일부 파손돼 인근 항구로 옮겨졌다.
해경 조사 결과 유조선은 어선의 옆 부분을 충돌하고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사고 해역을 벗어났다.
해경은 항적과 충돌 부위 분석 등으로 A호를 용의 선박으로 특정하고, 사고 현장에서 56㎞ 떨어진 여수 하백도 인근 해상에서 A호를 정박시켰다.
해경은 A호가 사고를 내고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한 것으로 보고, 선장(63)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사고 해역은 정규 항로나 일반 어선이 정박할 수 없는 해역인 통항분리대(마주 오는 선박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분리된 항로)가 아니어서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하다.
사고 당시에도 여수항을 오가는 유조선과 조업 중인 어선 수백 척이 항해 중이었다. 사고 해역에는 비가 내렸고 짙은 안개 때문에 시계도 좋지 않았다.
선박에는 일반적으로 자동위치식별장치(AIS)나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가 있어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위치를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게 돼 있다.
두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험 반경에 들어선 선박 간에는 물론 VTS에도 위험 신호가 울린다.
선박의 레이더 상으로도 인근 어선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어 충돌 가능성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장치가 정상 작동했더라도 VTS에서 수많은 선박을 모두 관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소형 선박은 레이더에 잘 감지되지 않는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일부 어선은 조업이 잘되는 곳을 선점하려고 이들 장치를 고의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선박 위치가 식별되지 않고, 레이더 상으로도 감지되지 않아 대형 선박이 소형 어선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욱이 대부분 소형 어선에는 AIS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V-PASS가 설치돼 있다.
사고 어선에도 V-PASS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VTS의 관제나 레이더 상으로 감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이들 장치 설치도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일부 어선은 이마저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을 수 있다.
여수 해상에는 어선뿐 아니라 많은 여객선도 항해하는 만큼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VTS의 관제 기능은 물론 선박 스스로 충돌 사고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해경 관계자는 "야간에 소형 선박은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고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아 충돌 사고 위험이 크다"며 "AIS가 고장 났거나 임의로 작동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아 선박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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