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출시 2개월을 맞고 있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흥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국민들의 '자산 증식'이라는 당초 도입목적과 달리 금융회사들의 '실적 경쟁'에 이용되고 있는 모습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출시 초기부터 문제가 됐던 '묻지마 가입 권유' 행태 또한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9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에 제출한 'ISA 금융사 가입금액별 계좌 현황 자료'를 보면 처음으로 ISA가 출시된 지난 3월 14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1개월간 은행권에서 개설된 ISA는 약 136만 2800개, 6311억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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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시 2개월을 맞고 있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흥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디어펜 |
계좌당 평균 가입액을 단순 계산하면 약 46만 3000원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소수의 상위 계층이 전체의 대다수를 점유하는 이른바 '파레토 법칙'이 ISA에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에서 개설된 전체 계좌의 74.3%에 해당하는 약 101만 3600개에는 가입액이 1만원도 채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0개 중에 7개는 이른바 '깡통계좌'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1만 원 이하의 ISA계좌에 대해 "투자 목적이라기보다는 개설 그 자체에 의의를 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회사들의 실적 경쟁, 은행이나 증권사가 '알아서' 투자를 해주는 일임형ISA의 특성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일단 만들어놓고 보는' 식으로 계좌들이 대거 개설됐다는 것이다.
9일 여의도 인근의 각 시중은행 창구를 직접 탐방해 본 결과 '묻지마 개설 권유'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에 비해 ISA 상품설명에 대한 창구직원들의 숙련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ISA 계좌 개설의 목적 자체가 자산 증식이나 재테크라기보다는 그저 '만들어둬서 나쁠 건 없으니 일단 개설해두고 천천히 판단하는 것'으로 변경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시중은행 중에는 가입 최소금액이 1원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1원만 넣어둬도 괜찮다"면서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입출금이 자유롭지 않은 점이나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ISA 도입 초기 시장 모니터링을 담당했던 금감원 한 관계자는 "질보다 양적인 부분에 치중한 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 시민들에게 증권사보다는 은행이 친숙하다 보니 은행에도 일임형ISA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 조치가 깡통계좌 양산에 일조한 면도 없진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ISA의 흥행이 초기 도입목적과 상이한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는 현행 ISA가 가진 근본적인 메리트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융권 한 전문가는 "이미 ISA는 재테크 업계의 주된 화두에서 이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5년간 중도 인출이 불가능한 점이나 중간 해지할 경우 비과세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등 일반인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든 단점들이 숨어 있어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ISA가 보다 흥행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 ISA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은행과 증권사들의 ISA 수익률이 공개되는 6월 이후가 되어야 진짜 흥행에 불이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6월엔 ISA에 대한 '계좌이동제'도 시행될 예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긴 관점에서 보면 출시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 가입하는 투자자들도 '얼리 어댑터'에 속한다"면서 "수익률 비교가 이뤄지고 나면 그 성적에 따라 계좌이동과 신규가입 흐름이 다시 조성되면서 시장이 재편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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