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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주필 |
광주5.18을 다룬 또 다른 영화 '택시 운전사'가 내년 초에 개봉된다는 소식을 얼마 전 전해 들었다. 광주사태를 외부세계에 알린 독일 카메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돕게 된 택시기사 김사복(송강호)의 활약상을 담는다는데, 듣는 순간 짚이는 뭔가가 있었다.
우선 개봉 타이밍. 왜 하필 대선이 치러지는 내년을 겨냥했을까? 700만 관객을 자랑했던 '화려한 휴가'도 2007년 그해 대선용이었다. 그 정도 흥행이었다면 최소한 수백만 젊은 유권자의 표를 좌우했다고 봐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 영화판에서 민주화란 절대선이고, 국가권력은 악마라는 싸구려 이분법이 너끈히 통한다.
내년 개봉되는 광주5.18 영화 '택시 운전사'
때문에 그 독일 기자는 분명 의로운 목격자로 캐릭터가 설정됐을 것이 분명하다. 좌파는 그에게 2003년 송건호언론상을 준 바도 있으니까. 수상 당시 그는 "1980년 5월 그날 나를 안내해준 택시기사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는데, 영화는 그걸 실마리 삼아 '화려한 휴가' 시즌2 제작에 여념 없으리라.
그래저래 영화 개봉을 전후해 내년 한 해가 광주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로 좀 시끄러울 것이다. 일부 넋 나간 대선주자들은 호남 표를 긁어모으기 위해 그 노래의 공식기념곡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며, 그 이전 여의도 국회도 박승춘 보훈처장 해임결의안을 들먹일텐데, 그때마다 세상은 광주5.18 문제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36년 전의 그 사건이 언제까지 한국사회의 덧나는 상처로 작용할 것인가? 지난 번 글에서 광주5.18이 '헛소문-과장-거짓의 바벨탑'으로 변해온 배경에는 북한의 음험한 대남공작 탓도 있다고 지적했지만, 그거 실로 불행한 일이다.
지금은 당시 민간 사망자가 166명이라고 믿지만, 1985년 <월간조선>이 그 사실을 보도했다가 광주에서 불매운동을 당해야 했다. 최소한 2000~3000명이 도륙 당했다고 호남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임산부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냈다는 거짓말도 통했는데, 그 마타도어를 처음 지어낸 건 평양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선전선동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10월 대구 폭동이 그 기점인데, 북한이 펴낸 한국현대사 책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1982년 조국통일사 펴냄)의 다음 대목을 보라. 허위날조를 통해 극대치의 증오감을 증폭시키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10월 (대구)항쟁에서 무려 2만5000명의 애국적 인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1만5000여명을 검거 투옥했다. 어떤 지방에서는 애국적 인민들을 산 채로 손발을 잘라 죽이기도 하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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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 컷. |
해방 이후 대구폭동 때부터 등장한 ‘시체팔이’
대구폭동을 포함한 해방 이후 대형사건은 반(反)대한민국 성향도 닮은꼴이지만, 시위양상도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시체팔이'가 그 하나다. 대구폭동의 경우 당시 대구의대생 최무학 등 5명의 대학생들이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 사체 4구에 흰 시트를 덮은 다음 "이게 대구역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사람들"이라며 거짓소문을 퍼트렸다. 그게 시내를 뒤집어놓았고, 폭동의 불길을 키웠다.
30여 년 뒤인 광주5.18 때에는 시체 두 구가 활용됐다. 5월21일 광주역에서 총에 맞고 난자된 상태로 발견된 김재화(당시 25세)-김만두(당시 44세)의 시체를 시민군은 리어카에 실어 끌고 돌아다녔다. 물론 이들의 시신에서는 나중 카빈총 탄환이 나왔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게 계엄군의 소행일 리는 없다는 뜻인데, 이런 게 밝혀진 지금 5.18을 놓고 그게 광주시민들의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제아무리 주장해도 우린 도무지 석연치가 않다. 또 대구 폭동과 제주4.3은 대한민국 탄생을 방해하려는 남로당의 불장난이라는 걸 세상이 다 안다. 제주4.3의 경우 여순반란 당시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 채 총부리를 대한민국에 돌렸던 14연대 반란병력의 국가반역 행위였다.
반란세력은 여수 시내에 인공기(人共旗)를 게양하며 인공 천하를 선포했는데, 당시 군경에 쫓겨 일부 세력이 산에 숨어들어간 것이 이른바 빨치산의 출발이기도 했다. 그런 여순사건이 훗날 광주5.18과 직간접으로 다시 연결되는데, 그 또한 우연일 리 없다.
탤런트 문근영의 외조부 류낙진은 빨치산 1세대
즉 빨치산 소년병 출신이던 <민족경제론>의 저자 박현채에서 시민군의 총책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바쳐진 광주5.18의 상징인물 윤상원으로 이어지는 '족보'가 있다. 그걸 촘촘히 규명한 게 김대령의 책 <임을 위한 행진곡>(비봉출판사)인데, 이건 너무도 명백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남민전의 전사 윤상원의 경우 그가 사모했던 운동권 '윗선'이 혁명시인 김남주였다. 놀랍게도 김남주의 위로 연결되는 계보가 류낙진(탤런트 문근영의 외할버지)과 박현채를 포함한 광주 빨치산 4인방이다. 그들 모두는 대한민국에 등을 돌린 남로당 패거리이자 잔당이다.
그렇게 얼키고설킨 대구 폭동과 제주4.3은 일란성 쌍둥이며, 제주4.3과 여순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32년의 시차에도 여순사건과 광주5.18은 하나로 묶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애시당초 5.18이 숭고한 민주화항쟁임을 인정하지만, 일부 국가전복 기도 등 마(魔)가 끼어들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4.3까지 민주화운동이자, 통일운동이라고 생떼를 부리는 건 숫제 대한민국 시민임을 거부하자는 행위에 불과하다.
바로 그점이다. 광주5.18에 대한 나의 관심은 우연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지금 대한민국은 이념적 합의가 깨진 사회다.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존중마저 희미해졌는데, 그 배경에는 건국과정에 대한 정치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게 체제붕괴(regime collapse) 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방향은 두 가지일 것이다. 우선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 문제다. 그들은 폭력혁명에 의한 북한식 체제 전환 외에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덜컥 내놓는, 최악의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먼 얘기가 아니다. 이번 총선이 그 전주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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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5.18을 다룬 또 다른 영화 '택시 운전사'가 내년 초에 개봉 예정이다. 영화 개봉을 전후해 내년 한 해가 광주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로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에 총부리 돌린 제주4.3-여순사건
또 하나는 '역사투쟁'에서 좌익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해 주저앉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대한민국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는 상황인데,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중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와중에 광주5.18을 몽땅 다시 내준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 정치판의 얼간이들이 모두 그까짓 노래 하나 제창 못할 것 없다고 외쳐대지만, 저들의 무책임이란 알면 알수록 끔찍하다. 선례도 있다. 제주4.3의 경우 이미 좌익에게 모두 내주고 말았다.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시절 인 2003년 제주도에 날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그 결과 제주4.3은 지금 거대한 '역사 해방구'가 되어버렸다.
또 2년 전 박근혜 정부는 제주4,3을 공식추념일로 공식지정하는 악수(惡手)까지 뒀다. 그런 기시감(旣視感) 때문에 요즘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실수가 광주5.18에서 재발될까 걱정이다. 그런 실수를 막으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문제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복한다. 제주4.3에 이어 광주5.18 내주면 대한민국은 없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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