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기대를 모았던 호텔롯데의 상장이 무산되면서 상장 주관사가 단 한푼의 수수료도 챙기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회계법인·신용평가사와 기업간과 같은 ‘갑을관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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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당초 오는 29일 상장할 예정이었던 호텔롯데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연루 의혹으로 상장 일정을 7월 21일로 한 차례 연기했다. 이어 롯데그룹과 오너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전일 상장을 전격 철회했다. 올해 상장은 불가능하게 됐고 추후 상장여부조차 불투명하게 됐다.
이에 따라 상장을 준비했던 증권사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대표주관사는 미래에셋대우가 최대 100억원, 공동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이 각각 30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날린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주관사는 IPO에 성공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홍성국 사장이 나서 프레젠테이션(PT)을 했고 호텔롯데 전담팀까지 만들어 지난해 9월부터 상장에 공을 들였던 미래에셋대우는 일단 ‘괜찮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상태 미래에셋대우 IB부문 대표(전무)는 “홍 사장도 착수금 등 수수료를 못 받은 것에 대해서 전혀 말이 없다”면서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달리 수수료를 못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호텔롯데가 빨리 정상화돼 자본시장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김 전무는 “미래에셋대우는 그간 롯데그룹의 KT렌탈(현 롯데렌터카) 인수금융에 참여했고 롯데쇼핑 상장 주관사를 담당하는 등 롯데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딜을 호텔롯데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닌데 상장 무산으로 충격을 크게 받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래에셋대우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경쟁이 치열한 IB업계에서 자칫 대기업과 사이가 틀어지면 향후 딜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심이 깔려 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의혹에서 회계법인과 신용평가사 입장과 마찬가지로 증권사도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증권사들이 호텔롯데와 같이 기업 측의 귀책사유로 상장이 무산되더라도 그간의 ‘수고비’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애당초 계약서에 착수금이나 중도 수수료를 요구하는 조항을 기업에 요구했다는 아예 주관사 자리를 따내지도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증권사의 서비스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기업이 갑에 위치에 있다 보니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딜이 무산된 경우에도 국내 증권사는 수수료를 한푼도 못 받는 게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고부가가치가 아닌 실행(execution) 단계에 불과한 천편일률적인 IB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결국 리스크는 증권사가 떠안는 구조가 굳어졌다”고 말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부사장)은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다들 딜 성공을 전제로 계약을 맺는 것”이라며 “딜이 무산되면 회사채 발행 등으로 손해를 일부 만회시켜주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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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성공했을 경우에도 수수료가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의 경우 상장 주관사는 통상 7%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증권사가 상장 주관사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기업에 비해 갑의 위치에 놓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 증시 상장 수수료도 4~5% 수준에서 형성돼 있다.
이번 사례를 비롯해 딜이 무산되더라도 증권사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대우 등 증권사가 소송을 통해 호텔롯데에 손해보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향후 롯데그룹의 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어 증권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부담을 떠안고 있다”며 “표준 계약서에 착수금이나 중간 수수료 등을 반영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투자협회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자칫 담합 시비가 나올 수 있어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상장 주관사인 증권사가 모두 중간 수수료 등을 요구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할 수 있어 협회차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용감하게 한 증권사가 나설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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