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책임추궁은 변양호 신드롬 유발" 우려도
[미디어펜=이원우 기자]감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결과가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출자회사 관리에 부실했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한편, 지나친 '국책은행 때리기'로 번질 경우 또 다른 '변양호 신드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6일 금융권과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 실태' 감사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부실한 재무 상태를 사전에 파악해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이미 구축된 '재무 이상치 분석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았다.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이란 개별기업의 재무자료에 대한 이상치와 신뢰성을 5등급으로 나누는 시스템이다.

   
▲ 감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결과가 거센 후폭풍을 자아내고 있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출자회사 관리에 부실했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한편, 지나친 '국책은행 때리기'로 번질 경우 또 다른 '변양호 신드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미디어펜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내부 통제‧사전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수주한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대규모 영업 손실이 가중된 데에 산은 책임이 있다는 감사 결과다. 

또한 감사원은 대우조선해양이 철저한 타당성 조사 없이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회사에 투자해 9021억 원의 손실을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 퇴직자 출신의 대우조선해양 CFO가 투자를 통제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은피아'가 대우조선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본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해 "결과를 수용해 책임자를 문책하고 지적사항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따라 내부 인사위원회를 거쳐 감사원이 요구한 이들에 대한 문책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조선과 관련된 후폭풍은 감사원 감사에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에서 최소 1조 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 정황이 포착됐다고 발표한 뒤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인 검찰도 감사원의 감사 자료를 수사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감사원과 달리 강제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경우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의 문제점은 지금보다 더 많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원과 검찰의 '합동공세'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당연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한편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추궁은 모두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면밀하게 조사를 했겠지만 대우조선 부실을 전부 산은 책임으로 몰아가는 건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 불황, 유가하락에 따른 플랜트 사업 손실, 경영진의 부실경영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만큼 산업은행 아닌 다른 누군가가 도맡았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특히 자회사 투자에 따른 손실의 경우 만약 이익이 났다면 평가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며 "실패가 곧 '죄'가 되는 상황은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풍토를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5일 금융연구원과 한국경제학회 공동주최로 열린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 지원체계 모색'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산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감 있는 선택을 기피하게 되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패널로 발언한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구조조정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경우 과도한 비난이 일다 보니 갈수록 구조조정이 '절차상 문제없는 쪽'으로만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주식으로 손해를 본 사람에게 그 주식을 왜 샀는지 묻는 건 공허한 일"이라며 "실패할 거라고 예상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재와 같이 산업은행이 지나치게 많은 구조조정 업무를 떠안고 책임까지 떠안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부서를 산은에서 독립시키거나 자회사 형태로 끌어내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행사의 좌장 역할을 맡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은행들이 부실 예상 기업들에 대한 충당금 쌓기를 미루지 않도록 감독 당국이 은행을 적절하게 지도해야 한다"며 당국의 변화를 요청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