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의식한 정치논리로 노조와 야합…벼랑끝으로 몰리는 한국경제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경영진도 직원도 노조도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국민혈세를 7조원이나 쏟아 부은 대우조선해양 얘기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저가 수주와 분식회계로 실적 뻥 튀기기, 노사결탁으로 흥청망청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이도 모자라 임 모 차장은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허위 거래명세표를 2700회 이상 작성해 회삿돈 18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임씨는 파견기술자를 등치고 가짜 임대인을 내세워 250차례에 걸쳐 허위 계약을 맺으며 회삿돈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빼돌린 회삿돈으로 명품시계 사고 외제차 굴리고 개인 사업에다까지 끌어다 썼다. 총체적 부실의 종합세트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14일 조합원 85%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파업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천문학적 부실 속에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회사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드러난 비도덕적인 것만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눈을 감았다. 노조의 행태는 무책임을 넘어 후안무치다.

뿐만 아니다. 2013년에도 35억 원대 납품비리가 드러나 임원 4명과 직원 30여명이 기소됐다. 당시 대우조선의 한 임원은 납품업체에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목걸이를 사오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까지 수시로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 14일 투표 참여 노조원의 85%가 파업을 찬성했다고 밝혔다. /사진=대우조선해양 노조

윗물도 아랫물도 다 썩고 국민 혈세로 갖다 부은 곳간마저 손댔다.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에서 모두가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였다. 49.7%의 지분을 가진 정부는 이제서야 "이렇게까지 썩어 있을 줄 몰랐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국민 세금을 갖다 퍼부면서 제대로 감시조차 하지 못함에 대한 자인에 그저 국민은 놀라울 뿐이다.

대우조선의 파국은 예정된 수순(?)을 밟았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조선은 2년 만인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한며 한 때 구조조정 모범사례였다. 하지만 새 주인을 찾지도 공적 자금을 회수하지도 않는 사이 대우조선은 부실공룡이 되어 가고 있었다.

'관피아'와 '낙하산'의 아지트가 됐고 자리보전에 급급했던 경영진은 온갖 청탁을 들어줬다. 노도 사도 제몫 챙기기에 바쁜 공생구조였다. 이 틈새에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멀쩡한 민간기업까지 저가 수주와 동반부실의 늪에 빠져들었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은 반시장적 정책과 정치권이 빚어낸 최악의 합작품이다. 기업경영을 정치 영역으로 끌고 간 노조와 오로지 표에만 눈독을 들인 정치권, 그리고 팔짱만 끼고 있었던 정부, 모두가 국민 세금 도둑의 공범들이다.

정치권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은 예는 허다하다. 특히 야권은 구조 조정을 '노조 탄압'으로 오독하면서 문제를 키워왔다. 정치권이 노조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면서 인력 감축 없는 구조 조정이라는 허황된 주장으로 그들을 부추겼다. 결국 정치권의 개입은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할 구조 조정을 정치 문제로 변질시키면서 나라경제에 직격탄을 던졌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에 등장한 희망버스 운동. 당시 좌파 단체 등이 주도한 '희망버스'에 야당 일부 의원들이 동참하면서 상황은 악화돼 결국 폭력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한진중공업은 그해 11월 시위대와 야당의 압박에 정리 해고자 94명을 복직시켰다.

결과는 일감이 없어 생산직 근로자들이 절반 가까이 돌아가며 집에서 놀아야 했다. 이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외부세력 개입의 후유증을 절감했다. 현재는 조선소 노조 공동 파업에 동참을 거부하는 반대의 입장이 됐다. 정치권이 구조조정에 끼어들면 근본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회사 경영에 잿밥을 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또 있다. 지난 3년간 채권단이 4조5000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재기에 실패해 결국 지난달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이다. STX조선해양은 지난 2009년부터 1000억원대 적자를 내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다 2013년 초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당시 STX조선소가 있는 부산·경남의 지역구 여당 의원 7명은 금융위원장을 불러 "과감하고 신속한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도 다를 게 없었다.

   
▲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에 등장한 희망버스 운동. 당시 좌파 단체 등이 주도한 '희망버스'에 야당 일부 의원들이 동참하면서 상황은 악화돼 결국 폭력 시위로까지 이어졌다.

정치권의 압박에 채권단과 금융 당국은 가장 낮은 단계의 구조 조정 방식인 자율협약을 선택했고 결과는 실패였다. 자신의 지역구 표를 위식해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구조조정 대신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지난 4·13총선을 전후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 노조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역시 지난 5월 대우조선해양 노조간담회에서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을 당해야 하는데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한 술 더 떴다. 지난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현대중공업을 찾은 그는 "현대중공업 가족분들이 구조 조정 안 하고 일할 수 있도록 특별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에 이어 "현대중공업에 쉬운 해고는 절대 없도록 하겠다. 집권 여당 대표인 제가 보장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표에 눈이 먼 정치권의 무책임한 말들은 경영위기를 부추기고 구조조정은 고사하고 끝내는 산으로 가게 된다. 기업은 구조조정은 경영논리에 맡겨야 한다.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결국 모두를 죽이는 파국만을 초래할 뿐이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가장 큰 적은 노조보다도 노조를 이용하는 정치다.

조선·해운의 구조조정은 더 늦출 수 없는 벼랑 끝에 다가가 있다. 여당은 폭탄돌리기기로, 야당은 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실업 대책만을 외치며 정쟁으로 날을 새워서는 안된다.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국가경제가 파탄 나고 말면 그걸로 끝이다.

어느 정치인의 자탄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인은 입으로는 경제를 살리자고 하면서도 표가 된다면 경제를 죽이는 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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