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 '현대 미술의 거장' 이우환(80) 화백이 경찰이 위작 판정을 한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그림 13점이 "전부 진품"이라고 밝혔다.
참고인 신분으로 29일 서울 중랑구 지능범죄수사대를 찾은 이 화백은 "13점 중 한점도 이상한 것 확인하지 못했다"며 "호흡, 리듬, 채색 쓰는 방법이 모두 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붓이나 물감을 다른 것을 쓸 때도 있고 성분과 색채가 다를 수도 있다"며 "작가는 자기 작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작 논란이 인 그림 중 한개에 써 준 작가 확인서에 대해서도 "내가 쓴 것"이라고 확인했다.
위작에 관여해 구속 기소된 현모(66)씨가 위조 사실을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설명을 거부했다.
27일 처음 지수대를 찾아 그림들을 감정했던 이 화백은 "이틀 전에도 다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좀더 고민해보고 입장을 밝히기 위해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경찰은 즉각 "생존 작가의 의견이 위작 판정에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수사 상황과 민간 전문가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등도 중요하다"며 "경찰은 13점 모두를 위작으로 보고 추가 위조범들과 위작 유통 경로를 계속해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13점 중 일반인에게 판매된 4점을 위조했다는 위조범들의 자백과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며 "위조범들이 물감에 섞었다고 진술했던 유리가루가 국과수 감정에서도 나왔고, 그림을 갖고 있던 일반인 명의로 지급된 수표가 위조범들의 계좌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위조범들이 직접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그림을 모사하는 장면과 이 화백 서명을 위조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도 근거로 제시했다.
경찰은 "이 화백에게 이런 증거들을 설명하니 첫 출석 때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그린 못 그린 그림인 줄 알았는데 당장 감정 의견을 내기 부적절한 것 같다'고 얘기하고 돌아가셨다"며 "그러나 오늘 다시 와서 '내가 작가이고, 작가가 내 것이라고 하면 맞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내 작품이 맞다'고 주장하셨다"고 밝혔다.
일반인에게 판매된 4점 중 1점에 딸린 이 화백의 작가확인서도 "직접 써준게 맞다"고 이 화백이 확인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법원에서도 안목감정, 과학감정, 출처 확인, 작가(사망 시 유족) 감정 등을 거쳐 종합적으로 위작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작가 의견은 존중하나 수사 사항들이 매우 특정돼 있고 안목과 과학 감정 모두 이 그림들을 위작으로 판단하니 수사는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화백의 작품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위작들이 2012∼2013년 인사동 일부 화랑을 통해 수십억원에 유통됐다는 첩보를 받고 지난해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위작에 관여한 화랑 운영자들을 잡아들이는 한편, 위작으로 추정되는 그림 13점을 민간과 국과수에 감정을 맡겨 모두 위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전문가들과 국과수는 이 화백의 진품 그림 6점과 이 13점을 비교해 물감 성분 원소가 다르고 캔버스를 인위적으로 노후화시킨 흔적이 보인다는 점 등을 위작으로 판정한 근거로 꼽았다.
경찰은 현씨 등이 위조해 국내에서 유통된 위작들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고 위조에 관여한 이들을 계속해서 쫓을 예정이다.
또 13점 중 유통판매책이 보관하던 8점과 경매에 의뢰된 1점은 아직 위조범이 특정되지 않아 안목 및 과학감정 결과를 토대로 수사할 예정이다.
이 화백을 다시 부르거나 진품을 추가로 확보해 감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화백은 그동안 작가 감정을 배제한 채 경찰이 위작 수사를 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해왔다.
또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만 봤음에도 그림들이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했고, 그림들을 본 후에도 입장을 고수했다. 이 화백은 내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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