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지난달 28일 울산 고려아연 2공장에서 발생한 황산 유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푸른색 'V' 표지와 관련된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V 표지란 황산 등 위험물질이 없어 작업해도 안전하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 배관 맨홀 뚜껑에 파란색 래커 스프레이로 표시한 V자 기호를 지칭한다.
원청업체인 고려아연은 작업 대상이 아닌, 즉 V 표지가 없는 맨홀 뚜껑을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여는 바람에 황산이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근로자들은 분명히 V 표지가 표시된 뚜껑을 열었으며, 고려아연 측이 사고 직후 V 표지가 있었다는 증거를 없애려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V 표지를 둘러싼 의혹 규명이 급부상한 것.
이번 사고는 지난달 28일 오전 9시 15분경 고려아연 2공장의 황산 제조공정 보수 작업 과정에서 터졌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가슴 높이에 있는 배관 맨홀 뚜껑의 볼트를 푸는 과정에서 농도 70%가량의 액체 형태 황산이 유출됐다.
사고 직후 고려아연은 유관 기관과 취재진을 상대로 브리핑을 개최했다. 고려아연은 "현장 작업자들이 열면 안 되는 맨홀을 여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면서 "작업 순서지와 사진까지 주면서 주지시켰는데 숙지가 미흡했던 것 같다"고 밝힌바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취재진 등에게 나눠준 '화학사고 상황보고서'에 사고발생 원인을 '작업도급업체 작업 확인 부족'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부상자를 비롯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근로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하청업체 한림이엔지 근로자들은 "애초 이번 작업은 고려아연이 배관 속 황산을 모두 빼내면 하청 근로자들이 배관 설비를 교체하는 것이었다"면서 "고려아연이 사전에 안전작업허가서를 발급했기 때문에 작업한 것이며, 원청의 안전관리 과실을 하청 근로자에게 돌려선 안 된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밝혀줄 단서로 V 표지가 급부상했다. 고려아연 측이 맨홀 뚜껑 51개에 V 표지를 해뒀다는 것이다.
회사는 사고가 난 뚜껑에는 이 표지가 없었다고, 현장근로자들은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9일 합동 감식을 열어 사고가 난 맨홀 뚜껑에는 V 표지가 '없었다'고 확인해 고려아연 측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자 부상자를 포함한 전국플랜트건설노조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고려아연이 사고 책임을 축소‧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주장에 나섰다.
노조 측 관계자는 "고려아연 상급자가 직원들에게 작업대상 배관을 파란색 V로 표시한 서류를 폐기하도록 지시한 진술을 확보했다"면서 "경찰과 국과수가 사고 배관이 아닌 엉뚱한 배관을 감식한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현장근로자들도 "분명 V 표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고 직후 현장이 통제됐고, 원‧하청 책임자를 불러 사고 배관을 확인한 후 감식했기 때문에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하면서 "다만 유출 황산에 V 표지가 지워졌을 가능성이 있어 국과수에 추가 감식을 의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V 표지에 대한 결론이 나고 양쪽 모두 그 결론을 수용할 때까지 파란색 스프레이 V 표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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