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지난달 19일 밤 인도양에서 어장이동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현 803호(138t)'에서 선상 회식이 열렸다.
선장이 그동안 수고했다며 양주 몇 병을 꺼내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회식 도중 베트남 선원 B씨(32)가 먼저 선장 양모씨(43)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요요요∼, 선장 넘버원"이라고 반복했다.
선장은 베트남어로 건배를 뜻하는 '요'를 욕설로 오해해 화를 냈다. 둘은 몸싸움을 벌였고 B씨가 선장의 얼굴을 밀쳤다.
다툼은 선장이 감정을 억누르며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B씨가 다시 '요요요∼'라고 시비를 걸어 재발했다.
두 사람은 다시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벌였고 이를 말리던 다른 선원을 B씨가 걷어차면서 분위기는 악화됐다.
화가 난 선장은 조타실로 올라가 선내 방송으로 B씨 등 베트남 선원 7명 전원을 집합시켰다.
조타실로 가기 전 B씨는 V씨(32)와 함께 동료 베트남 선원 5명에게 선장을 죽이자고 공모했다.
식당에서 흉기 2개를 들고 온 B씨는 그중 하나를 동료 선원에게 주며 조타실에서 선장을 찌르라고 했다.
B씨는 다른 선원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선장을 죽이는데 동참하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선장을 죽이지 못하면 강제로 하선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흉기를 건네받은 선원은 겁이 나서 갑판으로 던졌고 결국 B씨만 흉기를 들고 나머지 6명의 베트남 선원과 조타실로 올라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B씨는 흉기로 선장을 위협하며 베트남어로 "선장을 죽이자"고 말했다.
술에 취한 B씨가 순간 흉기를 놓쳐 조타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동료가 얼른 주워 밖으로 집어 던진 후 선장과 B, V씨가 난투극을 벌였다. 다른 선원들은 바라보기만 했다.
그 사이 B씨가 식당으로 가서 들고온 다른 흉기로 선장 등을 향해 휘둘렀다.
조타실에 있던 B, V씨를 제외한 나머지 베트남 선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 창고 속에 숨어 문을 잠갔다.
일부 선원은 당직 근무 후 쉬던 항해사 이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B씨와 V씨는 이미 한차례 흉기에 찔린 선장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V씨가 선장 뒤에서 목을 감싼 뒤 B씨는 선장에게 무려 15차례나 흉기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V씨는 흉기에 오른손을 찔렸다.
이들의 광기 어린 살인은 선장 한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타실 중앙통로로 연결되는 선실로 가서 잠을 자던 기관장에게 흉기를 8차례나 휘둘렀다.
B씨 등이 휘두른 흉기에 전신에 중상을 입은 선장과 기관장은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들은 칼부림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항해사 이씨도 죽이려 했다. 이씨가 선장을 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B씨와 V씨는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등 상당한 무도 실력을 갖춘 이씨에게 흉기를 빼앗긴 채 제압당했다.
B씨와 V씨는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범행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범행과정에서 오른손을 다친 V씨를 치료해주는 등 살인 피의자 2명을 다독여가며 4일간 선장과 기관장 없이 다른 선원을 통솔해 배를 무사히 세이셸로 몰고 왔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해양경비안전서(해경)은 애초 살인사건을 선사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진 항해사 이씨는 광기의 선상살인을 진압하고 다른 선원의 안전을 책임진 사실상의 검거자였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선상 회식에서 발생한 말다툼과 시비가 선상살인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고 피의자에게 직접적인 범행동기를 추궁하고 있다.
친척 사이인 32살 동갑내기 B, V씨는 지난해 2월부터 광현호에서 선원생활을 했다. 기관장과는 1년 이상, 조업부진으로 올해 4월 바뀐 선장과는 2개월가량 배를 탔다.
평소 작업이 서툴러 선장 등으로부터 욕설과 구박 등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B, V씨는 연료와 식량 등을 보충하려 세이셸에 정박한 뒤 출항시간에 늦게 돌아와 선장 등으로부터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동의서를 쓰라는 말을 듣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외국인 선원 가운데서도 최저 수준인 약 6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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