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저금리 장기화로 은행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금융기관이 한은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율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시중 자금이 요구불예금으로 몰리고 있어 비율은 같아도 예치 액수가 불어나는데, 은행들은 그 돈을 수익추구에 사용할 수 없어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급준비율을 하향조정해 달라는 요구와 지급준비금에도 이자를 부과해 달라는 요청이 나왔지만 한국은행은 '곤란하다'며 맞서면서 은행들이 전전긍긍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요구불예금 지급준비율을 2006년 11월 5%에서 7%로 상향한 뒤 지금까지 10년째 같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지급준비율이란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 중앙은행인 한은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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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금리 장기화로 은행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금융기관이 한은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율을 둘러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미디어펜 |
문제는 초저금리 시대가 길어지면서 자유롭게 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 잔액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지난 4월 현재 158조 1684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4년 사이 무려 77%나 늘어난 수치다. 2년 동안에도 약 50조원이나 늘었다.
언뜻 생각했을 때 금리가 낮아지면 요구불예금으로 돈이 몰리기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으로 퍼져나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위험회피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원금보전을 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에 돈이 모이는 경향을 보인다.
워낙 빠른 속도로 요구불예금이 늘다 보니 은행들은 지준금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비율은 10년째 7%로 같다지만 액수가 빠르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계산으로 짐작해 봐도 2014년 5월 요구불예금 잔액이 109조 9712억 원이었던 시절 은행들은 7조 6979억 원만 적립하면 됐지만, 잔액이 158조 1684억 원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은 11조 717억 원을 적립해야 한다. 단 2년 만에 4조 6000억 원 상당의 부담이 가중된 셈이다.
은행들이 한국은행에 바라는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지급준비율을 낮춰주거나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도 이자를 달라는 요청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보면 캐나다를 비롯해 지급준비 의무가 없는 나라도 있고, 미국처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부리(附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해외 사례를 참조해 은행들의 수익추구 여건을 개선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업계 전반에 존재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4월 하순 은행연합 이사회에 참석한 시중 8개 은행장들은 '지급준비율의 인하와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지급'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건의안을 작성해 한국은행 측에 전하기도 했다.
한은이 은행의 요구에 따라 지준율을 조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에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에 대해 연 2.3%의 이자율을 적용해 도합 5000억 원 규모의 이자를 지급한 적은 있다.
현 시점에서 한국은행은 은행들의 요구를 둘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들의 (지준율 관련) 요구가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지급준비율은 통화정책 수단으로 운용하는 것이라 상황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전례를 만드는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임형석 연구위원은 "시중은행과 한은 둘의 입장에 각자의 타당성이 있다"면서도 "미국이 지준금에 이자를 부여하는 건 양적 완화 이후 현재 시행 중인 제로금리 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한국 사례와 견주긴 힘들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임 연구위원은 "해외사례와 한국의 현실에 차이가 있지만 수익성 악화로 시름하고 있는 은행들 입장도 이해되는 부분은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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