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사드 놓고 미중 간 총성없는 외교전쟁 펼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라오스에서 26일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는 남중국해와 사드를 테이블에 올린 G2의 총성없는 외교전쟁터였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한치의 양보없이 벌이는 싸움에 다른 국가들도 편을 갈라 동조하는 형국이었다.

필리핀·베트남·브루나이 등 친미 그룹은 이번 ARF의장성명에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부인한 지난 12일 국제중재재판소 판결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등이 중국과 함께 이에 맞서면서 ARF의장성명에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를 담을 것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 사이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다. 윤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도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중국과 북한은 ‘반 사드’를 공동 기치로 내세워 공조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리용호 외무상은 이날 외교장관회의 연설에서 “남조선에 미국의 핵전략 자산들이 들어오고 핵보유국인 미국의 무력이 있거나 이런 경우에 아무래도 그런 대상들에 대해서는 과녁이 될 수 있다”며 핵개발 정당성을 되풀이해 주장했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5일 리용호 외무상과 따로 만나 양자회담을 가지면서 회의장 문밖까지 마중나가는가 하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리 외무상의 등에 손을 올리는 등 요란한 제스처를 보였다.

   
▲ 아세안(ASEAN)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장관이 24일 저녁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내년 수교 25주년을 앞두고 한중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으며, 북핵 및 사드(THAAD)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포괄적인 의견을 교환했다./사진=외교부 홈페이지

반면 왕 부장은 윤병세 외교장관과 가진 양자회담에서는 윤 장관의 발언 도중 턱을 괴고 있거나 손사래를 치는 등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었다.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 ARF 회의의 핵심 주제는 북핵과 사드, 남중국해 문제로 역내 국가 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사드와 남중국해 두가지 주제를 놓고 미중이 최고의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 만큼 북핵 문제가 가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회의기간 안에 ARF 의장성명은 채택되지 못했고, 갈등만 확인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북한의 잦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라 이번에 대북제재 메시지를 성명에 포함시키려던 정부 구상도 차질을 빚은 셈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이 지역의 모든 국가가 일치단결해 한목소리로 북한에 경고를 보내달라”고 촉구했다. 윤 장관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국제사회가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각국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참가국 대다수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철저한 준수를 강하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윤 장관은 ARF에서 거론된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체적으로 이번 (중국과 필리핀 간) 중재재판 결과를 염두에 두고 보다 평화롭고 원만하게 해결해 달라는 기대들이 많이 있었다”고 전했다.

남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당사국들과 아세안 등 27개국이 회원인 ARF는 아세안 관련 연례 외교장관 회의의 마지막 일정으로 끝났지만 의장성명의 당일 채택은 또다시 불발됐다. 의장성명은 참가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데다 남중국해와 사드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았던 만큼 최종 의장성명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ARF에서도 의장성명 도출까지 나흘이 소요됐었다. 2012년에는 남중국해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이견이 조율되지 않아 의장성명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27일 의장성명 채택과 관련해 “지금 의장국 주도 하에 의장성명 성안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언제 발표될지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장성명은 의장국인 라오스가 ARF에 참가한 27개 회원국의 의견을 취합해 회람한 뒤 수정을 거친 다음 만장일치로 채택된다. 

ARF 의장성명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안보 문제에 있어서 아세안 국가 간 ‘중립적 문서’란 상징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해관계 중심에 있는 당사국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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