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금융당국이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 회생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현대중공업 신규 선박에 대한 RG발급 '거부' 카드를 고려하던 농협은행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기업에도 대우조선이 제외돼 금융당국이 '대마불사'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농협은행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이 신규 수주한 선박 5척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불허'를 결국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RG는 조선업체가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금융회사의 보증을 의미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여신(與信)에 해당하는 업무다.
|
 |
|
▲ 금융당국이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 회생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농협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은 난처한 표정이다. 최근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기업에도 대우조선이 제외돼 금융당국이 '대마불사'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
문제는 농협은행을 비롯한 은행권이 위기에 빠진 조선업에 대한 여신을 제공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특히 농협은행은 지난 상반기 4대 시중은행이 전부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는 와중에 혼자서만 3290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이자이익은 2조 1419억 원으로 작년 동기대비 2.4% 증가했고, 비이자이익도 1370억 원으로 21.5% 급증하는 등 순이익이 날 여건은 갖췄지만 1조 3589억 원에 달하는 충당금 적립이 암초로 작용했다. 이 가운데 STX조선 4398억 원, STX중공업 1138억 원, 창명해운 2990억 원 등 조선‧해운업에 대해서만 약 1조 2000억 원대의 충당금이 적립돼 구조조정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은행으로서는 더 이상 조선업에 여신을 제공하는 일에 부담을 느낄 법도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우선 정부와 현대중공업 채권단은 이달 초 진행한 회의에서 RG발급 1순위로 농협은행을 지목했다.
이는 최근 현대중공업에 대한 여신액을 많이 줄인 순서대로 RG 발급을 진행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농협은행 한 관계자는 "한 마디로 난처한 상황"이라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말처럼 또 다른 구멍을 내라는 꼴이라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RG 발급 '거부' 카드를 쉽게 쓰지 못하게 된 데에는 금융당국의 '압박'도 한몫을 했다. 은행 전반적으로 부실 대기업에 대한 여신 축소 조짐이 보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직접 '실력행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말 주요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쟁적 여신회수가 확산될 경우 정상기업도 안정적 경영을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은행권의 여신 축소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당국과 등을 돌릴 수 없는 국내 은행산업의 구조를 감안할 때 결국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선업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회생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는 지난 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서도 엿볼수 있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STX조선해양 등 32개 대기업(7개 상장사 포함)이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선정된 가운데 조선 업종에서도 6곳의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포함됐다. 6개 기업 포함은 모든 업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다.
논란은 이 6개 기업 안에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빠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최근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수조원 대의 분식회계 정황이 의심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작년 한 해 최악의 시기를 보낸 빅3 어느 곳도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은행의 상황과 관련해서는 다른 은행들도 당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상황에 오히려 금융당국이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정당화 해주는 형국"이라면서 "이런 식이면 누가 당국 얘기를 믿고 한 마음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대우조선이 '정상기업'인 B등급을 받아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점에 대해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채권은행의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대우조선을 B등급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절차를 진행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농협은행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대우조선에 대한 은행들의 판단에도 당국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으리라 보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거세게 일자 금감원은 추가 보도자료를 내 "대우조선해양계열의 경우 2015년 하반기 재무구조개선약정 대상으로 선정해 계열 전체에 대한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마련해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적 악화에 빠진 대다수 조선업체들에도 나름의 자구계획은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 빅3 업체들에 대한 '특혜' 논란은 당분간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