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정경대원(正經大原)"
바른 길과 큰 원칙이란 뜻이다. 정경대원을 두고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호가 흔들릴 위험에 빠졌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업구조조정의 주체인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자구책에 "일말의 가치가 없는 대안"이라고 손사래 쳤다. 결국 한진해운에 대한 산소호흡기를 달지 않기로 하면서 물류대란으로 확산됐다.
결국 정부의 금융 논리에 의한 물류대란이라고 규정지은 여론은 정부에 서슬퍼런 칼날로 되돌아왔다.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기업 구조조정의 이해관계 속에서 여론의 뭇매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구조조정의 원칙이 흔들린다면 한진해운 사태는 제2의 변양호 신드롬이 될 수도 있습니다."
5일 오전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 현장에는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간담회를 주재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상장‧공모제도 개편방안, 회계투명성 강화방안, 현장중심 지역금융 발전방안 추진 등 금융개혁 현안에 대해 간담회가 펼쳐졌다. 또한 가계부채 대응, 우리은행 민영화, ISA 수익률공시 오류 등 최근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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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해운 몰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한진해운 스스로에게 있다. 해운산업에 대한 향후 전망이나 수익구조 등을 통찰력 있게 내다보지 못한 상황에서 쇠락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한진해운 |
화제의 중심은 역시 한진해운이었다. 금융위원회는 한진해운 관련 협력업체 등 지원방안에 대해서는 따로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한진해운 협력업체와 중소화주 등에 대한 특별자금 지원, 금융시장 대응반 운영과 일일점점체계 구축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방치해 물류대란을 자초했다는 비난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세간의 비판을 요약하면, 약 7년간 한진해운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내 해운산업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보수, 진보나 좌우를 막론한 모든 언론사들이 '정부 때리기'에 몰입하는 모습이다.
국내 해운업에서 한진해운이 담당하고 있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우려는 충분히 나올법한 지적이다. 세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던 한진해운이 사라진다 생각하면 그 상실감 때문에 정부에 대해 야속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태를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지금의 작금은 온당한 것은 아니다.
한진해운 몰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한진해운 스스로에게 있다. 해운산업에 대한 향후 전망이나 수익구조 등을 통찰력 있게 내다보지 못한 상황에서 쇠락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한진해운의 대주주는 한진그룹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한진해운이 이미 물류를 처리하겠다는 건 이미 돈을 받고 배에 실었다는 것이다. 즉 운송의 책임도 기업이 지는 것이다.
산업은행 등 정부와 국책은행이 마지막 자율협약에서 채권단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긴 했지만 회사는 어디까지나 오너의 소유다. 누군가에게 물류대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조양호 회장 일가가 되어야 한다. 정부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스스로가 만든 착시(錯視)에 속아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물론 한국 경제 수출 역군은 해운물류인 만큼 한국경제를 등한시 할 수 없지만 기업으로서 업황이나 미래전략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기업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무조건 정부의 보살핌이 없다는 핑계로 방관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도의적 책임보다 신용의 문제로 부각될 수 밖에 없다.
또한 기업 구조조정의 큰 틀을 벗어날 수 있는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현대상선의 경우 뼈를 깎는 고통감내와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 기업을 살리겠다는 자구책을 마련해 채권단의 동의를 얻었지만 한진해운 기업회생 자구책은 채권단으로 하여금 기업을 살리겠다는 회생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다.
물류대란으로 인한 우리 경제 곳곳의 생채기가 생긴다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자구책이 없다면 원칙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만일 여론에 밀려 뒤늦게 한진해운을 살리겠다고 정부의 방침을 회기 한다면 기업 구조조정의 형평성 논란에 빠지기 쉽다.
또한 해운업이라는 특성으로 무작위 회생 지원 카드를 꺼낸다면 일반 기업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물론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해 물류대란, 실업대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한다면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벌어질게 뻔하다. 그렇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될테고 부실이 계속 발생한다면 혈세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책임 소재와 혈세 문제에 대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데 이를 감당할 재간이 있겠는가. 이제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을 바로 세워 경쟁과 도태를 반복하면서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물론 정부도 한진해운발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정부의 책임도 일부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 물류대란과 우리경제 여파에 대해 그 고통을 대비하지 못했다"라고 인정했다. 이후 정부는 한진해운 처리 과정에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생긴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정부도 함께 짐을 지어야 겠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고통은 짧은 순간이지만 원칙은 불변해야 한다. 이게 정부의 판단이고 우리가 함께 감내해야 할 숙명인 것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30일 '한진그룹 제시안 수용불가 입장'을 공식 발표하면서 채권단이 한진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부족자금은 1조원에서 1조 3000억 원으로 확대될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한진 측이 마련한 자금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제 아무리 한진해운이 국내 해운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라 해도 자금이 부족하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숫자'의 문제다.
결국 임 위원장 발언에서조차 '제2의 변양호 신드롬' 얘기가 나오고야 말았다. 명백히 한진해운의 잘못으로 좌초된 결과에 대해서까지 정부 탓을 하고 있는 이 상황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국가 프로젝트에 뛰어들 공무원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흔들리는 상황도 우려된다.
당국 한 관계자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이태리, 스페인, 호주 등 경제대국들도 대형 선사가 없다"면서 "한진해운이 사라진 상실감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제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생과 사, 생성과 소멸이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 시장의 기본생리임을 이해하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시선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에 대한 지나친 돌팔매질도 거둬야 할 때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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