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7)-가정경영과 국가 경제 관리의 비법
크세노폰(BC 430?~355?) 『경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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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경제활동과 기업의 경영활동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도 경영활동의 대상과 폭은 달랐지만 경제의 원리와 경영활동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를 일컫는 영어 단어, Econom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이다. 경영은 재산(Oikos)를 잘 관리하는 일이다. 이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이는 진정한 경영자(Oikonomikos)로 불렸다.
크세노폰의 이 책은 고대 사회의 원초적 경영활동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이자, 동서양을 통틀어 지은이가 명확한 인류 최초의 경영학 저작이다. 크세노폰은 장년기에 아테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활약했고, 말년에는 농장을 경영하며 저술가로 활동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농장 경영의 경험을 토대로 가사 경영과 농사 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토불로스가 가사 경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당시 가사 경영과 농사일에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스마코스가 등장하여 소크라테스와 문답하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경영론을 펼친다. 물론 세 사람의 대화체 산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상 크세노폰 자신의 경영론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는 농업중심의 사회였다. 수공업은 천시되었고 농사일은 최고의 가치로 여겨졌다.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의 환경도 당연히 그러했다.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농사를 잘 짓고, 가사를 잘 돌보는 일일 테다. 필요한 경비를 적정하게 지출하고 잉여를 창출하여 가산을 불릴 수 있는 이라면, 이는 성공적인 경영자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다.
크세노폰은 부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지식이나 수단이 필요함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땅이나 가축, 금전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이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재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재화는 이용자의 효용 가치에 달려있다는 점을 파악한 셈이다.
크세노폰은 재화의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재화를 적절한 장소에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정리정돈을 잘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본다. 농사에 필요한 도구나 각종 물자의 체계적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선 가정의 경우 이러한 일의 수행을 아내들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전통적 여성관이 남아있었는데, 하물며 200여 년 전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의 이러한 한정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크세노폰은 가장인 남성의 경우 전쟁술 못지않게 농사술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이 이 두 기술을 적절하게 중시하고 각 지방의 총독과 수비대장들을 다스려 이들로 하여금 전쟁과 농사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사례를 들고 있다. 농부이자 동시에 전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고대 사회의 환경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현명한 가르침이다.
크세노폰은 농사의 유익을 거듭 강조한다. "훌륭하고 선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이자 최선의 지식은 농사술"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농사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며 즐겁다." 게다가 농사일은 육체를 강건하게 하며 남자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 경영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강조된다. 여성의 본성이 실내에서 하는 업무와 책임에 알맞다는 것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 통용되던 성 역할에 대한 관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기술되는 여성의 역할은 단순히 가사 관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예들의 관리, 재정 수입의 간수, 지출과 분배, 곡식과 가재도구의 질서정연한 보관과 사용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이쯤 되면 가사 관리에 관한 일을 일반적 기업 경영론으로 확대시켜 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크세노폰은 가정 경영의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이스코마코스의 사례를 통해 효율적인 가정경영론을 펼친다. 예를 들어 가사를 돕는 노예나 농장 관리인들의 자발적인 복종과 충성심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로써 순종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나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 등 치밀한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대목들은 현대 경영자들이 구사하는 인적자원 관리의 방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가정의 주인들은 노예들을 칭찬하며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주의력이 있는 관리 책임자를 잘 감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인이 모든 일꾼들을 직접 감독하기보다 관리자들을 육성하여 이들이 노동자들을 다스리는데 유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대규모 경영조직에서 강조하는 중간 관리자에게 권한 위임(empowerment)을 권장하는 취지와 맥락이 닿는다.
아울러 이들 관리자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라는 것도 매우 뛰어난 통찰이다. 관리인들의 경우 자발적인 복종을 하지 않는 경우 엄격한 징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부정의한 자들에게는 엄격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칭찬과 예우를 통해 정직한 행위로 얻게 되는 이득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정의한 자는 솔론의 법률에 따라 벌금형이나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의한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페르시아 왕의 법률도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관리인들에게 주인에게 좋은 일들을 행하려는 욕망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크세노폰이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호명지심(好名之心)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노동자들이 주인을 보고서 분발해서, 그들 각자가 더욱 힘을 얻어 일하고 서로 상대방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는 경쟁심을 보이며 각 노동자의 마음속에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렬해질 경우, 저는 그러한 주인이 왕의 품성을 가졌다고 볼 것입니다."
크세노폰은 이러한 점이 사람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농사의 실제 운영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기원전 8세기 경 호메로스와 쌍벽을 이루던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Ergakai Hemerai)』에서 보통사람들의 삶, 특히 농부들의 농사활동과 생활의 지혜를 노래한바 있다.
헤시오도스는 농사야말로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는 인간의 질서 있는 활동으로 보았다. 인간이 땀과 노고에 대한 정직한 보답을 얻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농사일은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크세노폰 역시 농사는 친인간적이고 온화한 기술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성품을 가장 고결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은 헤시오도스의 관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헤시오도스는 『일과 날』에서 계절별로 농사의 준비에서 부터, 파종, 수확, 타작, 그리고 포도주를 담그고 일 년 농사를 마무리하기까지의 농부가 챙겨야 할 일을 꼼꼼히 제시했다. 크세노폰은 작물의 파종, 과실나무의 식재, 땅 일구기, 거름주기, 제초, 타작, 키질의 방법을 상술하고 있다. 그가 농사일의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요소는 주의력 있는 관리와 근면함이다. 땅은 자신을 잘 돌보아 주는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보답하기 때문에 땅의 속성과 작물을 주의 깊게 살피며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세노폰이 설파하는 경영론의 함의는 가정 및 농장 경영의 범주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의 말미에서 농사일에 적용되는 원칙과 기법이 정치와 경영, 전쟁술 등 모든 사회적 활동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대를 통솔하는 지휘관에게도 가정 경영에 필요했던 역량이 공통적으로 요구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부하들을 열정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이다. 아울러 관리자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신상필벌의 원칙과 차등 보상의 원칙을 적용하라는 권고도 경영론을 확장한 일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고전 가운데 자산관리 및 인적자원 관리의 효율적인 방안을 제시한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정치가, 군인, 경세가, 농부 등 다양한 인생 편력을 지닌 크세노폰의 체험과 통찰이 짙게 배어있다. 2300년 이전에 현대 경영학에서 중시하는 재무관리와 인재관리의 요체를 설파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결코 가볍지 않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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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경영론』, 크세노폰 지음, 오유석 옮김, 작은이야기(2005), 229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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