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쪽지’를 받고 ‘기권’ 결정했다는 송민순 전 외통부 장관의 회고록 주장에 대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내놓은 답변은 “사실 관계를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라”며 국민적 관심을 모은 논란 자체를 비웃는 듯했다.
같은 날 그는 또다시 기자들과 맞닥뜨린 자리에서 진실을 묻는 질문에 “저는 기권을 주장했을 것 같은데 다 그렇게 (찬성을) 했다고 한다”면서 “기억이 잘 안난다”고 밝혔다.
허탈함까지 주는 그의 답변이 나오기 전날 문 전 대표의 측근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는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문 전 대표는 오히려 초기에 찬성 입장이었다”며 반박한 일이 있다.
게다가 김 의원은 “11월16일 대통령 주재회의에서 기권결정을 하고, 북한에는 이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과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11월15일 외교안보조정회의에서 이미 기권이 다수의견으로 결론이 내려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11월16일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당일 저녁 기권해선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서신을 작성해 대통령 관저에 보냈으며, 대통령이 11월18일 한차례 더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힌 것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송민순 회고록’이 논란이 커지자 문 전 대표는 오히려 몸을 뒤로 빼는 모양새다. 진실규명을 하자는 여당의 공세에 그저 “색깔론”이라는 말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리고 문 전 대표의 측근들은 송 전 장관과 다른 주장으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처음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도 본질은 빼고 주장만 담아 사실상 물타기를 시도한 일이 있다.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모든 것을 토론으로 결정한 노무현 정부를 배우라”고 했다. 진실규명을 해야 할 논란의 장본인이 할 적절한 말이 아니어서 적반하장식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문 전 대표는 16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당대표란 분이 금도도 없다”며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니냐.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린다. 이제 좀 다른 정치 하자”고 반박했다. 같은 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 데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다.
문 전 대표의 물타기 화법에다 측근들의 회고록 반박 주장들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색깔론”이라며 맞받고, “노무현 정부를 배우라”고 응수하는 문 전 대표는 이번 사태를 그저 대선을 앞두고 으레 벌어지는 정치공세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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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입장을 담은 ‘쪽지’를 받고 ‘기권’ 결정했다는 송민순 전 외통부 장관의 회고록 주장에 대해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기억이 잘 안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은 저자의 의도나 출판 시기 등을 따지기 전에 시사하는 바가 무겁다. 정치권의 진실공방이나 정치공세와 달리 국민들은 5차 핵실험까지 끝낸 북한정권과 마주할 안보 문제로 이번 사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책의 내용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어떤 인식으로 대북정책을 결정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정권이나 북한주민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던 당시 주변국가와 국제사회는 북한인권 문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정작 노무현 정부는 무르익던 남북대화에 골몰해 엇박자를 놓으며 북한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조단계를 실기했다.
당시는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북한인권 문제가 부각될 때였지만 노무현 정부는 뒷전이었다. 반면 송 전 장관은 복합방정식 같은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선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의 내용을 보면 남한사회 내 북한을 보는 인식이 달라 벌어지는 갈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안에서도 벌어졌었다. 정권마다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갖지 못해 70년동안 이어진 분단 이유를 ‘송민순 회고록’이 규명한 것이다
송 전 장관은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로 회고록 내용을 둘러싼 진실공방을 일축했다. 그는 또 언론에 “(당시 상황 등을 기록해놓은) 메모 기록만 수백개가 있고, 이를 다 맞춰가면서 회고록을 썼다”고 밝혔다. 회고록 말미 ‘감사의 말’에서도 “2012년 국회를 떠나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메모 수첩과 낱장의 쪽지들을 뒤지면서 과거의 기록과 생각을 복원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가 ‘친미’보다는 ‘반미’ 성향이 강했던 것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외교부장관으로서 국제사회와 창구 역할을 했던 송 전 장관은 상대적으로 소외됐을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송 전 장관은 책에서 2007년 10월4일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2007년 7월29일 김만복 국정원장이 비공개로 방북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날짜를 협의했고, 8월3일 노 대통령이 그 결과를 수락했다”며 정작 자신은 정상회담 발표 당일인 2007년 8월8일 청와대 조찬회의장에 도착해서야 알게됐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장관에게 급히 통화해 설명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처음 침묵을 지키던 청와대도 17일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문 전 대표의 ‘기억이 안난다’는 발언에 “너무나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김성원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들은 어이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누구 회고록이든 세상에 믿을 만한 회고록은 없다”면서 “그분(송민순 전 장관)의 소신을 자서전에 피력한 것 같은데, ‘아, 그러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과 집권당, 검찰권력은 환멸스러운 종북몰이 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문 전 대표도 이날 “허구헌날 종북 타령과 색깔론으로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경제와 민생이 이렇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은 북한 덕분에 존속되는 정당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최순실 씨 국정 논단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반박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20일 싱가포르에서 노 전 대통령이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참석 중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에게서 북측으로 받은 반응이라며 쪽지를 건넸다”고 적었다. 쪽지에는 “인권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있는 입장을 취하기를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북한 결재’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남한 정부가 ‘기권’을 행사한 놀라운 일은 내년에 있을 차기 대통령선거까지 논란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 후보로서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문 전 대표의 북한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 생각을 낱낱이 밝히고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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