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절반이상이 은행직원…'관치금융 폐해' 지적 나와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은행권이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지만 청년희망펀드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입장'이라는 항변이 나온다. 1년 만에 1400억을 모은 청년희망펀드 가입자 중 절반 이상이 은행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치금융의 오랜 폐해를 보여준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광고 감독)이 지난 8일 밤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미 검찰은 차 씨의 은행거래 내역을 확인해 연관 있는 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바 있다.

   
▲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은행권이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지만 청년희망펀드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입장'이라는 항변이 나온다. /연합뉴스


시중은행들은 차 씨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져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이미 최순실 씨(최서원으로 개명)와 그의 딸 정유라 씨의 여러 의혹에 시중은행이 말려든 상황이라 더욱 부담이 커졌다. KEB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최씨 모녀에 대한 특혜대출‧거액인출 관련 사안으로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차 씨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은행권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면이 없지 않다. 차 씨가 청년희망재단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와 같은 정서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특히 청년희망펀드 문제는 은행이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쓰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공익신탁형 기부금 펀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9월 국무회의에서 제안한지 닷새 만에 조성됐고, 박 대통령 자신이 1호 기부자로 나서 화제가 됐다.

삼성‧현대차‧LG 등 대기업 CEO들도 수십~수백억원 규모의 기부금을 쾌척해 큰 관심을 받았다. 결국 청년희망펀드 모금액은 조성 1년 만에 1400억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미르‧K스포츠재단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반강제적 압력이 행사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시선은 복잡하다. '진짜 피해자는 대기업 총수보다 오히려 은행권'이라는 시선마저 존재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청년희망펀드 조성 시점에 단체 가입 할당이 은행 직원들에게 내려왔다"면서 "지금까지도 많게는 수십만원을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뜯기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실제로 청년희망펀드 가입자 약 9만 3000명 중에서 은행직원은 절반이 넘는 4 800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제안하고 대기업 총수들이 '치어리더' 역할을 했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은행 직원들의 주머니에서 기금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명목상 자율모금의 형태를 취했을 뿐 '할당량'이 내려온 이상 은행권으로서는 분위기를 맞춰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또 다른 관계자는 "당국이 어떤 테마를 내걸면 알아서 보조를 맞춰주는 은행권의 '관치 습성'이 이번에도 발동된 것"이라면서 "ISA‧성과연봉제‧사잇돌 대출 등도 전부 똑같은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차 감독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청년희망펀드 문제는 얼마든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은행직원들이 '동원'됐다는 심증이 물증과 함께 확인되는 순간 금융권 전반의 '관치금융 폐해' 문제도 다시금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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