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면서 은행권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던 미 연준의 '12월 금리인상'에 대해서마저 의문이 제기됐다. 미리부터 유동성 관리에 나섰던 시중은행들의 수익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올 한 해 호실적이 계속 이어졌지만 향후 전망은 어두워졌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트럼프 쇼크'로 인한 외환‧주식시장 변동성이 여전히 큰 상태다. 지난 10일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회복하긴 했지만 하루 만인 11일 2000선이 재차 깨졌다. 코스닥 역시 620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1160원대로 급등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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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면서 은행권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연합뉴스 |
당초 '통제불능'으로 예상됐던 트럼프 당선자가 수락연설에서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 모든 나라를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유세 기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점이 시장에 '안정' 사인을 던진 면은 있다. 현재 상황도 '패닉'이라고 말할 정도의 극심한 혼란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에 투자한 외인들의 '팔자 공세'는 생각보다 거셌다. 대선 이후 제거될 것이라 생각했던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의 통화정책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대선이 끝나고 12월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OMC)가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지만, 대선 결과가 나오자 속단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역시 경기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장해온 만큼 금리인상에 인색한 방향으로 미 연준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예측마저 나온다.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한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미 연준의 '12월 금리인상설'이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바뀌었다고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으면서 "여전히 시장에서는 12월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국내 은행권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심하는 눈치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 주말부터 트럼프 당선 이후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면서 "특히 외화유동성과 관련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가다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한은행‧우리은행‧기업은행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대응체제를 가동시켰다.
일단 시중은행들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외화유동성 여건은 나쁘지 않은 상태다. 국내 은행의 외화 유동성 비율은 10월 말 현재 107%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별로 '3개월 외화유동성비율(9월 기준)'을 보면 우리은행 118%, 국민은행 116.4%, 신한은행 109.4%, 기업은행 103.6%, KEB하나은행 102.9%를 유지하고 있다. '3개월 외화유동성비율'이란 만기가 3개월 내에 돌아오는 외화자산 대비 외화부채 규모를 의미한다. 현재 시중은행 모두가 100%를 넘고 있어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상태다.
금융당국도 당장의 혼란은 은행권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약간의 하락이 있었지만 감독 기준인 85%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다"면서 "개별 은행들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고 낙관했다.
문제는 장기 수익성이다. 은행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올해 내내 이어졌던 호실적을 더 이상 이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 지연되면 저금리 장기화에 따른 이자이익 축소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 은행권의 수익성 개선이 힘들어진다.
은행권 수익의 대부분을 순이자마진(NIM)이 설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인상 지연은 은행권에는 나쁜 뉴스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기정사실로 생각됐던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돼 당혹스럽다"면서 "전반적으로 은행권 리스크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은행 수익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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