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방향키 놓치면 제 2의 IMF위기 부를 수 있어…출구전략 시급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 경제는 삼각파도에 갇혀있다. 첫 번째 파도는 ‘경제의 체력저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 대에서 2%대의 성장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의 구조화’로 3만 달러 소득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두 번째 파도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엄습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은 공백상태이다. 경제사령탑도 부재이다. 세 번째 파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미지의 리더십’이다. 우리 정책당국은 트럼프의 당선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태이다. 파도 하나만으로도 힘에 겨운데 3개의 파도가 동시에 덮쳐 오고 있다. 자칫 정책 방향키를 놓치면 제2의 IMF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1. 미지(未知)의 트럼프 리더십

문제가 복합적일수록 통제변수와 비(非)통제변수를 구분해 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당선은 우리에겐 비(非)통제변수이다. 트럼프 리더십의 불확실성은 트럼프의 당선 과정을 복기(復棋)하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점친 언론은 거의 없었다. 미국 동부의 주류 언론들은 하나같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기울어진 편향 보도로 일관했다. 언론들은 사실(fact)보다는 보고 싶은 것만 보도했다. 트럼프에게 ‘미치광이’의 이미지를 씌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미국의 다수인 백인 중산·서민층의 바닥 정서를 읽어내지 못했다. 서민층의 분노를 파고든 ‘트럼프 현상’을 언론들은 보지 못했다. 한국 언론도 편향된 시각에 덩달아 춤을 추었다.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미친 트럼프’이미지가 만들어졌다.1)

트럼프의 승리요인은 ‘위선적 정치 모법답안(Political Correctness, PC)’ 공격과 ‘워싱톤 기득권(Washington Establishment)’ 비판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인기영합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분노’를 결집시키는 것이다. 트럼프는 PC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분노를 ‘표’로 연결시켰다. PC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오바마 집권 이후 ‘Merry Christmas’가 사라지고 ‘Happy Holiday’가 대신 쓰였다. 크리스마스를 인정 안하는 무슬림들이 불쾌해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2)

종교 자유의 왜곡도 PC의 다른 예이다. 일리노이의 한 배달회사에서 일하는 무슬림 배달 트럭기사가 선물 배달에서 술이 발견되자 종교적인 이유로 배달하기를 거부했고 선물배달이 중단되면서 손님들의 불만이 자꾸 접수되자 회사는 문제의 무슬림 트럭기사를 해고 했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배달회사를 ‘종교 탄압죄’로 고소하고 그 회사에게 엄청난 벌금을 물렸으며 무슬림 트럭기사에겐 24만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다.3)

합리적 근거에 따른 이유 있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원리주의적 사고’도 PC의 한 유형이다. ‘Gender Pay Gap’(남녀임금차이)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에 따르면 성별 임금차이는 ‘남녀차별’이 아닌 ‘전공차이’에 기인한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문학이나 심리학, 예술을 전공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고소득으로 연결되는 공학, 물리, 과학, 경제, 경영을 전공하고 있다. 또한 남성종업원들은 여성종업원보다 초과근무(overtime working)를 하는 비율이 높다. 연봉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합리적 차이는 남녀차별에 묻혀버렸다.4)

미국에서 모든 정치인들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지적하면 바로 히스패닉 표를 잃고 인종주의 차별자로 낙인찍혀 정치적 타격을 받기 때문에 불법이민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 같은 불문율은 ‘위선적인 정치적 정답'으로 PC의 전형이다. 누구도 불법이민자들이 일으키는 심각한 범죄와 마약 밀수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했다.

   
▲ 우리 경제는 삼각파도에 갇혀있다. 첫 번째 파도는 ‘경제의 체력저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 대에서 2%대의 성장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의 구조화’로 3만 달러 소득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두 번째 파도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엄습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은 공백상태이다. 경제사령탑도 부재이다. 세 번째 파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미지의 리더십’이다./사진=연합뉴스


트럼프를 제외한 힐러리, 부시, 크루즈 같은 후보들은 PC에 대해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이들 후보들은 ‘SuperPac’5)이라는 거대한 로비스트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캠페인을 대부분 자기 돈으로 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세력과 동부언론에 기반하지 않은 철저한 ‘국외자(outsider)’였다. 그는 자신의 약점일 수 있는 국외자로서의 처지를 ‘역(逆)이용’해 동부언론과 클린턴 진영을 ‘워싱톤 기득권층(Washington Establishment)’으로 몰아세웠다. 상대방을 부패한 기득권층으로 묶어놓을 수 있다면 선거에서 ‘반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를 기득권층으로 묶어 놓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멋진 정치 슬로건을 구사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이에 필적할만한 정치적 슬로건을 착안하지 못했다. 대신 그를 광인으로 몰고 갔다. ‘숨은 트럼프 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선거에서 기적은 없다.

트럼프는 선거과정에서 “한미FTA 재협상, 주한미군방위비 분담 증액”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보호무역을 신봉하는 고립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 그는 기업인이다. 법인세와 개인소득세 감세를 주장했고 그의 참모진은 시장경제를 주창하는 ‘헤리티지 재단’ 인사로 채워졌다.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공약들은, ‘미국 국익 우선(American First)’의 기치를 내건 정치인으로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거공약대로 한미FTA 재협상이 정식 아젠더가 된다면, ‘공정무역(fair trade)’ 차원에서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쪽에서는 한미FTA 룰(rule) 하에서의 ‘자유무역이 공정무역임’을 설득하는 논리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 증액요구는 굳이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 입장에서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차제에 한미동맹을 보다 강화하는 조건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간의 전화대담은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자는 교감을 나눈 것으로 해석된다.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를 한미FTA 재협상과 연계시키면 우리 쪽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2. 제2의 IMF위기 도래할 것인가

【표 1】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년도인 1996년과 2016년을 비교한 것이다. 1996년에 비해 2016년 현재 개선된 지표는 “국가신용등급, 단기외채비중, 기업부채비율, 그리고 외환유동성(경상수지)” 이다. 기업부채비율이 감소하고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외환유동성 확보가 주된 개선내용이다, 반면 1996년에 비해 개악된 지표도 많다. 경제성장률이 저하됐고, GDP대비 투자비중이 하락했으며 제조업평균가동율도 낮아졌다. 그만큼 경제활력이 저하됐다는 예기다.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0%에 이르러 가계부채가 부채폭탄으로 변했다. 가계소득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가계부채는 더 무거운 짐이 됐다.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청년 실업률도 두자리 수로 증가했다.

   
▲ 【표 1】 외환위기 직전년도와 2016년 경제지표 비교.6) 주: 국가신용등급은 S&P 최근 등급 기준, 2016년은 상반기 기준.


제 2의 외환위기가 다시 들이닥칠지 여부를 미시적으로 분석해 보자.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체질’의 악화이다. IMF외환위기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중후장대 주력산업은 노쇠해져가고 새로운 먹거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 제조업 부실누적

   
▲ 【표 2】 제조업 주요성과 지표./자료=기업경영분석: 전수조사, 단위 %


【표 2】는 한국은행의 외감기업을 전수조사한 제조업 주요성과 지표를 정리한 것이다. 【표 2】를 보면, 기업 구조조정의 문제는 2012년부터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6.5%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2010년 기업매출 증가율은 18.5%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유로존 위기가 발생하고 글로벌 경제가 장기간 침체를 지속하면서 【표 2】에서와 같이 매출액 증가율과 제조업평균 가동률은 급락했다. 매출액 증가율은 2012년 4.2%, 2013년 0.5%를 거쳐 2014년에는 –1.6%의 성장률을 보였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2010년 80.0%에서 2013년에는 76%로 저하됐다. 저금리로 금융비용부담률은 크게 낮아졌지만 이자보상 배율은 개선되지 않았다. 기업의 수익이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15년에는 10%를 넘어섰다. 이는 ‘과다고용’을 시사한다. 2010년, 2011년에 과잉 투자한 기업들에게 매출액 증가율과 가동률이 급락하면서 부실이 쌓여갔고 구조조정 위기를 맞게 됐다. 조선과 해운 업종이 그 사례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경제민주화’와 현실적인 법제도 미비 등으로 구조조정은 정책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설령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식했다손 치더라도, 재무보강을 구조조정으로 잘못 인식했다. 이렇게 우리나라 해운과 조선 산업의 부실은 쌓여갔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조선 ‘빅3’ 체제를 2018년까지 유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대우조선은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15조원 넘게 지원(대출+보증)받고도 여전히 회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맥킨지 보고서를 토대로 대우조선의 사업 분야를 축소해 조선 빅3 체제를 ‘2강 1중’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빅3체제를 주장한 금융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대우조전은 2016년 6월 말 현재 총부채(18조621억)가 총자산(17조2858억)을 넘어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있다. 따라서 자본확충을 하지 않으면 증시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애초 2020년까지 설비·인력을 30%씩 줄인다는 대우조선 자구계획을 2018년까지 2년 앞당기기는 것으로 절충했다. 2년 정도 버틴 뒤 조선경기가 좋아지면 대우조선을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 뒤 조선업황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맥켄지 컨설팅 대로 ‘2강 1중’ 구도로 갔어야 맞다. 3강 체제로 가겠다는 것은 대우조선해양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협력업체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대마불사’의 변형된 논리이다. 2018년까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자동적으로 청산절차에 들어간다는 ‘최소한의 조건절’이라도 걸었어야 했다.

2) 가계부채 누적과 내수 부족

가계부채는 규모, 증가 속도, 질적 측면에서 모두 정상 궤도를 벗어났다.7) 【표 3】에서 보듯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6월 말 현재 90%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 비율이 85%이면 가계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에 제약을 주는 임계점으로 보고 있다. 가계부채가 소비 위축을 불러와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미국처럼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15.6)에 의하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비율(DSR)이 40%를 넘는 한계가구는 2015년 3월에 벌써 134만 가구를 돌파했다. 이들 가구의 상당수는 고령층과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으로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대출 연체나 파산으로 이어질 위험에 처해있다. 부동산 경기를 통한 성장률 관리와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정책 딜레마는 증폭됐다.

 
   
▲ 【표 3】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 추이./자료=한국은행

김영란법도 내수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생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법은 좋은 법이 아니다. 정책효과를 내려면 정책대상을 정밀하게 조준할 필요가 있다. 기자와 교수 등을 포함시켜 법 적용의 외연을 넓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정청탁방지와 이해충돌방지의 원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3)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절상압력

한국경제는 최근 들어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바림직한 현상은 아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수출이 수입을 초과해서 얻어진 흑자가 아닌, 국내투자 부진으로 중간재·원재료 중심인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해 초래된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불황형 흑자는 ‘위기의 그림자’이다. 【표 4】에서 보듯이 1997년 IMF외환위기로 1998년 투자증가율이 21.0%로 급락(-)하면서, 수출은 3.6%소폭 감소(-)했음에도 수입이 36.5%로 대폭 감소(-)해 당시 사상 최대의 400억 달러 불황형 흑자를 기록 했다. 2008년 위기로 2009년 투자증가율이 0.3%로 추락하면서 수출증가율이 15.9% 감소(-)했음에도 수입증가율이 24.9% 감소(-)해 경상수지는 33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이후 5년째 불황형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불황형 흑자는 원화가치 절상압력을 높이고 수출 감소로 이어져 일자리를 앗아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 【표 4】 경제성장률, 투자증가율과 경상수지 추이./자료=한국은행


4) 외환보유액

11월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9월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3751억7000억불) 규모는 세계 7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3조1664억 달러로 외환보유액이 가장 많고 일본(1조2601억 달러), 스위스(7006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5539억 달러), 대만(4367억 달러), 러시아(3977억 달러) 순이다. 9월말 외환보유액은 전월대비 26억 달러 감소했다. 외화자산 운용수익의 증가에도 미 달러화 강세에 따른 유로화, 엔화 등 기타통화 표시 외화자산의 미 달러화 환산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산 유형별로는 국채와 정부기관채, 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MBS·ABS) 등의 유가증권이 3422억9000만 달러(91.2%)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치금은 237억8000만 달러(6.3%), 금은 47억9000만 달러(1.3%)를 나타냈다. 특별인출권(SDR)은 25억 3000만 달러(0.7%) 이다.

외형상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연간 수입액을 5000억 달러로 봤을 때, 외환보유액으로 6개월치 이상의 수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보유고 대부분이 유가증권 등으로 투자돼있기 때문에 현금 동원 능력은 상당 정도 제한적이다. 글로벌 금융시대에 자본의 이동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진정되지 않아 외국자본이 한국을 빠져나가면 한국은 ‘재앙적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증권시장은 폭락할 것이며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등이 빠져나가면 산업공동화를 면할 수 없게 된다.

   
▲ 제 2의 외환위기가 다시 들이닥칠지 여부를 미시적으로 분석해 보자.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체질’의 악화이다. IMF외환위기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중후장대 주력산업은 노쇠해져가고 새로운 먹거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사진=연합뉴스


3. 트럼프 이후 예상되는 경제 질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제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그간 트럼프 당선자의 당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공약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 후 보여준 포용적 수락 연설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빠르게 진정되고 있다. 트럼프는 감세와 규제완화, 그리고 재정지출을 통한 인프라 투자확대를 약속하고 있어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은 금융시장에도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1) 저금리 정책에 대한 불신: 점진적 금리인상

수년간의 저금리가 이제 끝나가는 국면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미국의 경기회복과 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으로 디플레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와중에 트럼프 당선이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재정확대를 통해 인프라 투자를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공언했다. 낡은 인프라를 대체하는 데 약 1조달러를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 국채발행은 자연스럽게 국채금리 급등(국채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8)

트럼프는 그동안 앨런 의장이 오바마의 의중을 읽고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작위적으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왔다는 의심을 해온 터이다. 여기에 미국의 고용과 물가 상황 개선이 지속되고 있고 FRB도 연내 금리인상을 시사한 만큼 Fed는 12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금리 인상속도가 정치적 영향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적정 금리 인상 횟수를 2회로 보고 있다. 한편 EU의 양적완화도 내년 3월까지로 예정돼있다. 순차적인 테이퍼링을 거쳐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이 예상된다.

초저금리, 양적완화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정착되고 있다. 최소한 금융경색에서 벗어났으니 더 이상 초저금리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점진적이지만 지속적인 금리인상과 그에 따른 달러강세가 예측된다.

2) 규제완화 및 감세를 통한 실물위주의 경제운영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에게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의 감세를 약속했다. 공약대로라면 법인세는 35%에서 최대 15%까지 내려가게 돼있다. 15%의 법인세율이면 개인소득세율보다 훨씬 낮은 세율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절세차원에서라도 자신의 경제활동을 법인형태로 꾸려나갈 것이다. 새로운 창업 붐이 불수도 있다. 한마디로 ‘비즈니스 프렌들리’다.

미국 경제의 중심이 금융·서비스에서 실물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월스트리트에 경도된 추가 매인스트리트 쪽으로 일정부분 이동할 것이다. 그는 금융인이 아닌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트럼프는 임기 동안 1조달러 규모의 공공 인프라 투자도 공언했다. 낙후된 도심지역을 재개발하고 고속도로와 교량 터널 공항 학교 병원 등을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IT를 결합한 첨단 도로나 항만 건설도 점쳐진다. 무인차 주행에 필요한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전망되고 있다. 첨단 기술과 결합한 인프라 투자다. 거기에서 신수요가 발생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트럼프 경제의 핵심이다.

또한 트럼프는 셰일가스 대두에 따른 에너지원 확보에 강한 자신감이 보이고 있다. 에너지를 적극 개발해 에너지 자립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는 철강과 자동차기업들을 일으킬 저력이 에너지원에 있다고 믿고 있다.

   
▲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조선 ‘빅3’ 체제를 2018년까지 유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대우조선은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15조원 넘게 지원(대출+보증)받고도 여전히 회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한진해운


4. 한국의 대응전략

한국경제는 삼각파도에 직면하고 있다.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만 달러 이하에서 ‘저성장이 구조화’되어가고 있다.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고 수출도 복합적인 요인으로 예전과 다르다. 올 8월을 빼고 19개월째 전년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가계 빚은 올 6월말 현재 GDP 대비 90%에 육박하고 있다. 금리가 조금만 오르더라도 원리금 상환에 큰 충격이 가해진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비율(DSR)이 40%를 넘는 한계가구는 이미 2015년 3월에 134만 가구를 돌파했다.

사면초가에 빠질수록 원칙에 입각한 사고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모두 저성장에서 비롯된다. 저성장이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정책역량은 성장페달을 밟는 데 모아져야 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시간문제이다. 우리도 시차를 두고 금리를 일정부분 올릴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폭탄을 관리하려면 가계소득을 올려 부채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시 성장페달이 답이다.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성장률을 올리려면 규제완화는 필수적이다.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고용을 촉진할 수 있는 입법을 하루속히 타결해야 한다. 중단된 노동시장유연화 입법도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

한미 FTA 재협상과 높은 관세율이 현실화되면 수출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강 달러’(strong dollar)가 현실화되면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을 보강할 수 있다. 한미 FTA에 따른 자유무역이 미국의 국익에도 배치되지 않는 ‘공정무역’(fair trade)임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의 감세와 인프라 투자는 한국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법인세 감세로 법인세 증세론은 더 이상 힘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대외 불확실성’이 증폭될 여지가 있다.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고 금리 급등 시 적절히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대응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경제의 상극은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경제심리 위축,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그리고 성장에의 부정적 영향은 불문가지다.

정치는 경제의 울타리이다. 정치의 불확실성이 이토록 경제에 짐이 된 적이 없었다. ‘헌법적 절차’에 의거 작금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면 더 이상의 국정공백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총리 인선에 시간이 걸린다면 경제부총리 청문회라도 신속히 개최해 ‘사령탑 부재’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배가 기우니 모두들 돛대로 올라가려 하지만 배가 침몰하는 데 돛대에 올라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국정의 방향키’를 놓치면 제2의 IMF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1) 미국대선 개표결과가 속속 밝혀진 19일 조선일보의 “[미국 대선]트럼프 선거인단 187명 VS 클린턴 197명” 속보가 떴다. 기사입력 시간은 “2016-11-09 13:19”이었다. 오전 12시 경에 이미 트럼프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지만 조선일보는 오후 1시 19분에도 클린턴 승리 가능성을 보도했다. 특이사항은 클린턴 197명을 뒤에 썼다는 것이다. 클린턴 띄우기에 앞장선 CNN(cable news network)이 ‘클린턴 news network’의 오명을 썼듯이 조선일보도 ‘클린턴 일보’란 힐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2) 미국의 상당수 중고등학교에서는 미국 국기를 내리고 게양을 금지 시켰는데, 이유인즉, 미국국적이 아닌 학생들이 위압감이 든다고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기를 학교에서 금지시킨 것은 많은 미국인들을 분노에 차게 만들었다.

3) https://www.youtube.com/watch?v=q7qnyxqbaus

4) https://www.youtube.com/watch?v=EwogDPh-Sow

5) '정치행동위원회'로 불리는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외곽 후원단체를 말한다. 캠프에는 소속되지 않고 외곽에서 지지 활동을 벌이는 슈퍼 팩의 특징은 합법적인 모금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2010년 미국 대법원은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직접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이나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무한정 모금을 할 수 있게 판결함으로써 슈퍼 팩에 날개를 달아줬다.

6) 한국경제신문 2016. 11. 7일자 A4면 ‘커지는 경제위기론’을 재구성한 것이다.

7)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자금순환 통계 기준) 비율이 2014년 말 162.9%에서 올 6월 말 173.6%로 급증했다. 최근 재건축 붐에 따른 대출 수요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부지역의 재건축이 실물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은 아니다. 투기로 이어질 뿐이다.

8)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9일1월 이후 처음으로 연 2.0%를 돌파한 데 이어 10일엔 연 2.15%까지 치솟았다. 3년 만에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금리 상승세는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영국 10년 국채 금리는 4일 연속 올라 연 1.34%까지 상승했고 지난달 초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독일 10년 국채 금리는 연 0.274%까지 올랐다.


(이 글은 14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시계제로 한국경제, 출구는 없는가' 긴급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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