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딱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사처럼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시중 A은행 기술금융 관계자)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기술금융'에 대한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권은 실적 압박을 하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맞춰 무리하게 기술금융을 집행하는 눈치다.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기운데 '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의 리더십이 '실종'되면서 기술금융 지속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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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기술금융'에 대한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권은 실적 압박을 하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맞춰 무리하게 기술금융을 집행하는 눈치다. /연합뉴스 |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술금융에 대한 은행권의 딜레마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기술금융이란 담보나 실적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기업 대출을 의미한다.
지난 2014년 도입된 이래로 정부는 은행권에 기술금융 활성화를 계속 독려해왔다. 지난달 25일에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술금융을 통해 신성장동력 창출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기술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마련했다. 기술금융 실적은 연말에 은행별로 '정산'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기술금융 실적이 좋은 1~2위 은행들에게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내는 직전반기 출연금의 일정 비율을 감면해준다. 실적이 부진한 4~6위 은행들은 가산금을 내야 한다. 현재까지 실적을 놓고 봤을 때 기업은행이 약 90억원의 인센티브를 받고 농협은행이 63억원 정도의 가산금을 내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무작정 기술금융을 확대할 경우 고스란히 은행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금융의 대상이 되는 기업들은 아무래도 대출회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방침만 믿고 무작정 확대했다간 순식간에 대출 부실률이 폭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에 요구하는 자본건전성 기준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술금융을 함께 독려하는 건 대단히 아이러니한 일"이라면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은행들의 고민이 깊다"고 토로했다.
겉으로만 보면 기술금융의 추세는 확장 일로에 있다. 2014년 7월 1922억원으로 시작된 기술금융 규모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올해 8월 현재 84조원까지 커졌다. 건수 기준으로 봐도 2014년 7월 486건이던 것이 올해 8월 현재 17만 건에 달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밀어붙이기'식 독려가 양적 측면에서 기술금융을 성장시켰지만, 질적으로는 부실화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기업 실사를 생략하거나 기존의 신용평가 보고서를 베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실적 경쟁이 과열되는 흐름 속에서 필연적인 결과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금융위 측은 이와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기술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평가에 분명히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면서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타진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게이트'는 기술금융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청와대의 리더십이 사실상 실종되면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모든 사업에 대한 지속성이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기업대출 부문 한 관계자는 "기술금융 정책이 흐지부지될 경우 지금까지 은행권이 기술기업에 대출해준 금액은 고스란히 '눈 먼 돈'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결국 정부가 대출부실만 키운 것으로 스토리가 끝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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