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예상대로였다. 민망함과 더했다. 실망감은 새로울 것도 없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호통에 모욕, 망신주기, 본질을 벗어난 질의, 조롱, 면박이 난무한 최악의 막장 드라마였다. 최순실 청문회는 그렇게 일막을 내렸다.
맹탕 청문회에 맹물 질의, 아버지뻘 증인에게 손들어 보라는 장면은 '봉숭아 학당' 저리가라였다. 그저 촛불 민심에 얹혀서 숟가락이나 올려보자는 얄팍한 심산이었나 보다. 아들뻘 의원의 요청에 대기업 총수들이 손을 든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언짢게 했다. 외신들의 반응에서 보듯 나라망신이다. 자질이 의심스런 국회의원들이 국격을 갉아먹은 것이다.
저승길 운운하며 인격모독의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최순실을 좋아하느냐는 선정적인 19금 질문도 나왔다. 재계 총수 9명이 출석한 청문회장은 삼성을 겨냥한 이재용 청문회였다. 27명의 증인 중 최순실을 비롯해 14명이 빠진 최순실 청문회는 김기춘 청문회로 전락했다.
언론의 과장된 보도만 읊어대는 의원들의 헛발질 질문을 국민들은 똑똑히 목도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객쩍은 농거리도 안 되는 수준 이하의 댓거리엔 실소도 사치였다. 청문회는 말 그대로 국회에서 증인, 참고인, 감정인을 채택하여 필요한 증언을 듣는 자리다. 말 자랑 대회나 자기 과시용 자리가 아니다. 점잖은 훈계도 오만이다.
청문회가 열렸던 시간으로 되돌아 가보자. 그 낯 뜨거움과 민망함과 나라의 격을 떨어뜨린 현장으로 말이다. 기억 안 난다는 증인들을 몰아치던 그들도 지금쯤은 아마도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들이 연출한 기막힌 막장 드라마의 몇 장면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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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부터)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 장면 1
6일 최순실 청문회에 나간 대기업 총수들이 손을 번쩍 든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시는 분들 손들어보세요"라는 의원 요구에 여든을 앞둔 대기업 총수가 손을 들었다. 일흔하나의 또 다른 총수도 함께 했다. 아들뻘 의원은 의기양양해했다. 법 앞에 위아래가 있을 수는 없지만 법 앞에 무시를 당해서도 안 된다. 법 이전에 인간이고 인격의 문제다.
# 장면 2
대기업 총수들이 무더기로 참석한 6일 청문회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청문회였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쏟아진 막말들은 귀를 의심케 한다. '돌려막기 재용', '머리 굴리지 마라' '직원에게 탄핵 받을 것' '삼성 입사시험서 낙방할 것' '경영권을 넘기는 게 어떤가'. 조폭 입에서나 나올만한 험악함에 인신공격, 경영간섭까지 청문회가 아닌 협박장이었다. 반기업정서의 살풀이 현장이요, 저주의 난장이었다.
# 장면 3
"김기춘 증인, 당신께서는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반성 많이 하십시오!" "부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니 '왕실장' 대신 '오리발 실장'이라고 별명을 붙여 주겠다" "법률 미꾸라지". 7일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국회의원들이 던진 모욕과 저주다. 고성과 막말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질문이 이어졌다. 언론과 수사기관이 던져 준 미끼만으로 편안한 낚시질을 해 온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품위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려해도 찾을 수가 없다. 품위제로다.
# 장면 4
"최순실을 좋아하느냐". 7일 고영태 증인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낯 뜨거운 19금 질문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제가 미우시죠" "개인적으로 미워하지 말라". 장시호 증인을 앞에 놓고 한 말이다. 청문회장이라는 것만 빼면 묘한 분위기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 순간 코미디 프로로 착각할 만하다. 의혹을 밝히고 증언을 듣는 자리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농담 따먹기나 하라고 주머니 털어 혈세는 내는 국민은 없다.
언론 보도에 귀를 홀리고 촛불 민심에 눈이 먼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칼자루를 쥔 양 행세하고 있다.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보다는 광장의 촛불에 휩쓸려 광대 흉내를 내고 있다. 얻은 것 하나 없는 맹탕 청문회로 대국민 기만쇼를 벌였다. 정치를 혼탁하게 하더니 이젠 경제마저 망치려 들고 있다.
6일 청문회에서는 삼성·현대차·LG·SK 등 국내 9대 그룹 총수들을 무더기 불러내 호통을 쳐댔다. 외신들의 눈은 여의도로 쏠렸다. 망신당하는 기업 총수와 확인되지 않는 흠집내기를 전 세계에 대 놓고 홍보(?)했다. BBC는 이날 "그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대개 권력과 부가 있는 그들만의 세상에 산다. 검은 고급 승용차의 검게 선팅된 유리 뒤에 숨어 있다"고 묘사했다.
준비 안 된 청문회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불을 지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수십년간 공들여 쌓아 온 신뢰가 몇몇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한순간 날아갈 판이다. 국회의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쩔쩔매는 대기업 총수를 바라 본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과연 그들은 한국에 투자할 만용을 부릴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라 부르지 않고 국해의원(國害議員)이라 부르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국민은 자괴한다. 이러려고 내가 국회의원을 뽑았냐고. 300명의 배지는 '이러려고 국회의원을 한 것인지'를 똑똑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촛불의 다음 행로는 국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회는 국정감사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도 본업에 불성실하고 소홀했던 그들의 잘못도 한몫했다. 국민의 눈에는 공범이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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