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명 삭제·범죄사실 유무 가리지 않는 속도전 꼼수…헌재 헌정 파괴 막아야
   
▲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20일 구체적인 죄명을 삭제하고 재작성한 탄핵소추안을 이르면 다음 주 초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로 밝혔다. 이제 와서 탄핵소추안을 바꾸겠다는 국회다. 탄핵 심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 범죄 사실에 대한 유·무죄를 가리려면 탄핵심판 절차에 시간이 걸리므로 헌법 사항 위주로 재작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권선동 탄핵소추위 위원장은 "구체적 범죄사실에 대한 유·무죄는 형사재판에서 가려야 할 사안임에도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것은 국회가 탄핵심판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탄핵소추안 변경은 검찰의 공소장 변경과 같은 것으로 기본적 사실관계는 유지하면서 법적평가를 달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회는 이제 와서 탄핵소추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권 위원장 또한 "우리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다"고도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점은 소추위원단의 3당 간사 합의로 탄핵소추안 재작성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권 위원장 스스로 (공소유지가 안 되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과 같은 것’이라 언급했으면서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 재의결 없이 자신들이 얼마든지 재작성해서 제출할 수 있다는 변명이다.

공소장을 상부 결재 없이 검사 맘대로 변경하겠다는 취지인데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은 필요 없다는 궤변이다. 국회는 민주주의-대의민주제의 취지와 탄핵 심판의 본질을 파괴하고 있다. 국회의 이러한 모습으로는 탄핵 인용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가 향후 보다 성숙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 국회 소추위원단 간사 3인의 동의로 갈음할게 아니라 대통령의 위헌 여부를 적시한 국회의 새 탄핵소추안이 다시 국회 의결 절차를 거쳐서 헌재로 넘어가야 한다./사진=미디어펜

작년 12월22일 첫 변론기일, 헌재는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국회가 탄핵사유를 추가수정 제출하자 헌재는 ‘국민 뜻이 왜곡되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회는 이제 와서 구체적 범죄 사실 유무를 가리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탄핵 소추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의도였음을 자인한 셈이다. 문제는 탄핵 사유로 구체적 범죄 등 중대 범죄 요건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헌법 수호 위반을 사유로 탄핵을 소추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헌재든 국회든 그들의 판단이 대통령 의무를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초헌법적인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헌재의 탄핵심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인용 결과보다 탄핵 과정에서의 철저한 법치주의 실현과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다. 국회 소추위원단 간사 3인의 동의로 갈음할게 아니라 대통령의 위헌 여부를 적시한 국회의 새 탄핵소추안이 다시 국회 의결 절차를 거쳐서 헌재로 넘어가야 한다.

헌법 위반 여부에 앞서 대통령의 범죄 사실관계가 확정되어야 한다. 모호한 잣대로 헌법 위반을 판단하겠다는 건 국회와 헌재가 정치 재판을 하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퇴보요 법과 원칙이 없는 사회 구현이다. 어렵게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를 국회와 헌재가 허물고 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 작년 12월22일 첫 변론기일, 헌재는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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