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CO2 배출량 기준을 초과하는 신규 구매 차량에 최대 700만원의 부담금을 부과하고, CO2 배출량이 적은 차종에는 부담금을 면제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오는 201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1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 시 ▲국민부담 증가 ▲수입차에 유리한 제도로 인한 한국 자동차산업 경쟁력 약화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중복규제 등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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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울산공장./뉴시스 |
◆국민부담 증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가 시행되면 국산 경·소형차를 구매하는 서민들의 부담은 커지는 반면, 고가 수입차 구매자들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례로 1,000만원대 안팎인 기아차 모닝과 한국GM 스파크(각각 LPG 모델 포함) 등 경차에는 보조금 혜택이 없다. 또 서민층이 다용도 차량으로 구매하는 기아차 레이 1.0과 프라이드 1.4(A/T 기준)의 고객은 차량 가격이 10배나 비싼 BMW 730d 고객과 마찬가지로 25만원의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3,000만~4,000만원대인 폭스바겐 제타 1.6, BMW 320d ED 구매자들은 50만원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또 BMW 520d, 벤츠 E220 CDI 및 아우디 A6 2.0 TDI 등 가격이 6,000만~7,000만원대에 달하는 고가 프리미엄 차량들의 부담금이 면제된다.
◆한국 자동차산업 경쟁력 약화
환경부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의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보너스-맬러스(Bonus-Malus) 제도’는 당시 디젤엔진과 소형차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르노, 푸조 등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사실상의 기술적 무역장벽으로 작용했다.
보너스-맬러스 제도 도입으로 인해 당시 프랑스 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던 수입차 메이커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았던 중대형차, SUV모델 등의 판매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업계는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 시행 시 수입차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불합리한 구조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디젤 차량을 앞세워 국내 자동차 시장을 질주하고 있는 독일차 판매는 더욱 늘고, 하이브리드카 부문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일본차의 부활도 예상되는 등 수입차 판매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내수침체 ▲수입차의 시장 잠식 ▲엔저로 인한 수출 감소 등 경영환경 악화로 인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또 노조문제와 환경·안전규제 등이 겹쳐 정책적 여건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며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단축 등 각종 노사 관련 현안으로 인한 수 조원의 추가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업계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사 887개사 중 중소기업 비중이 절대 다수(76.9%, 682개사)인 점을 감안하면 제도 시행 시 생산물량 감소, 조업단축, 매출손실, 가동률 저하 등으로 부품 협력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차 구매 부담 보조금 대비 1조원이상 많아
제도가 시행되면 신차 구매자들이 내야 할 부담금이 받을 수 있는 보조금보다 최소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돼 소비자들의 신차 구매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시장에 판매된 신차 중 저탄소차 협력금제 대상 차종 126만여대 (국산차 및 수입차)에 환경부의 탄소배출량 구간 및 금액(안)을 적용해 본 결과, 신차 구매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총액은 443억원인데 반해, 내야 할 부담금 총액은 1조1,090억원에 달했다.
이는 차종별 탄소배출량과 지난해 판매대수를 감안해 보조금과 부담금의 누적금액을 계산한 것으로 부담금 총액이 보조금의 25배가 넘는다.
또 신차를 산 소비자들이 낸 부담금으로 다시 다른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도 남는 돈이 1조647억원이나 된다.
환경부는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매년 순차적으로 탄소배출량 구간 규제치를 강화해 나갈 계획으로 신차 구매자들이 내야 할 부담금 총액 규모는 지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차 협력제 ‘이중 규제’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을 통해 현재 국내 자동차-연비 CO2 배출기준 (10인승 이하 승용·승합차)을 2015년까지 판매 차량의 평균연비 17km/ℓ 또는 CO2 배출량 140g/km 중 제작사가 택일하는 방식으로 CO2 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이 같은 CO2 배출 규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CO2 배출량을 기준으로 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까지 시행될 경우, 자동차 및 부품 산업계는 중복규제를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저탄소차 협력금제와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동시에 시행될 경우 이미 시행 중인 ‘탄소’ 관련 제도와 정책 목적 및 규제 방식이 유사해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는 3중 과잉규제가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 “제도 시행의 주체인 자동차 업계의 의견을 배제한 채 제도 시행을 강행하는 것은 국가 기반산업인 자동차산업 및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라며 “제도 도입의 실효성에 대해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감축 실효성 의문
2020년 우리나라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억 톤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는 “탄소차 협력금제 도입을 통해 기대되는 2020년 한해 온실가스 감축량은 약 15만8,000톤으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0.15% 수준에 불과하다”며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는 성급한 제도 도입으로 인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자동차 업계와 연계한 중장기 로드맵 등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제도 시행을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제도 개선안을 통해 CO2 배출량이 40g/km 이하일 경우 보조금을 최대 700만원까지 지원한다고 밝혔으나, 이에 해당하는 차종은 상용화 및 민간시장 활성화에 시간이 요구되는 전기차에 불과하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