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가치 훼손 반시장주의적 발상…노동력 상실 나라 살림 거덜
   
▲ 이동응 경총 전무
추운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 있다고 생각하자. 실제 방안의 온도가 0도인데, 온도계의 온도를 32도 높게 눈금을 바꿔보자. 0도에서 32도로 온도를 올려놓았다고 해서 추운 방이 과연 후끈후끈 따뜻한 방으로 바뀔까? 국민 모두에게 정부예산으로 백만원씩 기본소득의 명목으로 나누어주면 우리의 소득이 정말 높아지고 생활이 풍족해지는 건가? 

최근 유력 대선주자들이 앞 다투어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들에게 생활여건이나 근로능력과 상관없이 국가가 일정하게 제공하는 소득"으로 정의된다. 지난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가 회부되고, 결국 부결되었지만 이로 인해 기본소득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촉발되었고, 올해는 핀란드와 네덜란드가 기본소득 실험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조기대선 국면과 맞물려 진보진영에서는 아젠다로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한가 하면, 일부에서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복지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의 기본소득 논의는 타당성이나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단순히 선거공약의 구호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실험을 추진 중인 유럽은 이미 1980년대부터 활발한 논의를 거쳐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의 개념조차 생소하며 충분한 연구나 사회적 공감대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한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기본소득제 도입을 남발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복지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복지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사진=연합뉴스

기본소득 도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핀란드와 미국 알래스카州의 경우 역시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올해부터 2019년까지 기본소득 실험을 추진 중인 핀란드는 최근 경제성장률 1% 미만의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으나, 국민부담률과 사회복지지출은 상당히 높은 고부담-고복지 국가이다. 

이로 인해 구직자들이 일자리보다 실업수당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8%대의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어 왔다. 이에 보수우파 정부의  시필레 총리는 과도한 복지를 대체하고, 침체된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심각한 고용경직성 문제는 외면한 채 기본소득만이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본소득과 가장 유사한 사례로 언급되는 미국 알래스카州의 영구기금배당(Permanent Fund Dividend) 역시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알래스카州는 석유 등 천연자원을 매각한 수익으로 1976년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를 조성, 1982년부터 주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동 배당금은 넓은 영토와 적은 인구(약 74만명)로 인해 거주민들에게 SOC 등 적정한 사회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반대급부에 해당한다. 이러한 배당제도를 경제, 사회, 지리적 측면이 상이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근로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도 심각한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소득 자체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발상은 근로를 통한 소득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반시장주의적인 접근이다.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실업이 장기화되는 한편, 개인의 근로능력도 퇴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갈등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표심에 의지해 실체도 없는 기본소득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이는 국민들의 합리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충격의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것은 결국 노동력을 상실시키고 기본소득이라는 약물에 의존해 살아가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무책임한 기본소득 주장은 극단적 포퓰리즘이자 유토피아적 정책구상에 불과하다. 극우파가 사회복지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낸 기본소득 개념을 이제 극좌의 이념에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동응 경총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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