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붕괴 30년…변화없이 '과거로 안으로 폐쇄적으로' 퇴행한 진보
   
▲ 이인철 변호사
보수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보수는 존재하는가

탄핵 정국에 들어서 많이 들은 것은 보수가 몰락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망할 정도의 보수라는 진영과 무너질 정도의 보수이념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기는 하였나라는 생각이다. 새누리당의 노선이라는 것이 더불어 민주당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이 있었다. 이념을 떠나서 공화국이 지켜야할 공화국의 단일한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87년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에 출발선에서 산업화세력과 구민주화세력이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소위 삼김이 건재할 때였고 당대의 민주화 세력은 진보라고 부르기 보다는 오히려 보수 세력이라고 부를 만하였고, 오히려 산업화 세력이 더 진보적 가치를 보유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구도가 변화한 것이 80년대 학번인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는데 일부는 진보정당으로 갔고, 대부분은 구민주화세력에 합류하여 그들이 후일 민주당을 장악함으로써 진보정치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되지는 않고, 80년대 여러 가지 사유를 섞은 잡탕 이념이고 오히려 민족주의성향이 너무 강해서 수구라고 부를만 하였다.

사실 87년 체제에서 보수 진보의 명칭은 서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진보 이념이라는 것이 과거지향적이고 사회주의 사고와 민족주의정서에 물들어 있으며 진보 진영이라는 것이 너무도 퍠쇄적이었으니 그러하다. 보수 진영이라는 것도 사회적 경제를 이야기하는등 지향점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보수나 진보나 정도의 차이이고 주소가 다른 당사를 따로 쓰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이를 모르겠다. 

여하튼 남들이 이야기하는데로 관용어로서 각자를 보수와 진보로 불러주기로 하자. 진보가 생겼다고 해서 반대로 보수가 성립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이념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구민주세력이 사람을 키우지 않았고 그래서 보수를 담을 그릇이 없었으므로 보수가 생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전통 민주당이 친노세력에 의해서 장악된 것도 이념 부재와 사람 부족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87년체제에서 보수란 자칭 진보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군소 진보정당의 대항마로서의 위치에 있는 정당을 지칭하는 정도의 의미를 가졌으므로 민주당의 반대편에 선 정당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국민으로서는 선택지가 둘밖에 없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일 것이다. 정당이 본래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보다는 국민의 반대되는 성향을 받아준다는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었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도도 그러하지만 인물구도의 정치로 나아가는 경향이 생긴다. 특별히 구분되는 이념을 정립하지 못하는 한 그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 촛불민심에 보수는 몰락했다? 광장정치가 무서워서 벌벌떤다면 그만두고 대선 보다 먼저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사진=연합뉴스


80년대말 유럽 공산권의 붕괴와 세계각국의 보수정권의 등장 그리고 신자유주 체제(신자유주의는 어떤 체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종래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좌파에서 시빗거리 삼아 부르는 용어로서 실체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데 그들의 방식을 따라서 쓴 것이다)의 진전으로 세상이 변하였지만, 한국의 진보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 그리고 안으로 점점 퍠쇄적이 되었다. 사회구성체논쟁의 진행과 그 이후의 공화주의적 관점에 대한 접근들도 있었지만 어떤 변화는 없이 지내왔다, 이론적 변화나 이념의 개혁이 없던 것은 진보가 사회의 주류층에 편입되어서 퇴행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화주의 측면에서 공화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일단은 보수의 기본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겠다. 1948년을 기점으로 공화국이 탄생하였고 아직 70년이 안되어서, 공화국의 전통을 세우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 공화국이란 공화국을 지키려는 의지와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에 의해서 성립되고 유지된다.

서구의 공화국이 수백년에 걸친 투쟁으로 성립된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진행될 과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침 진보진영은 공화국에 반하는 분파주의 성향으로 인하여 반대 당사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특히나 87년 체제 기간동안에 주류가 된 386 운동권의 80년대식 사고방식은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공화국의 건국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함으로 인해서 공화국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가 대립되는 양상이 전개된다.

공화국의 권위는 국가로서의 유지되는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따라서 공화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의 진보와의 투쟁은 진보가 지금의 그 낡은 옷을 벗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전선은 공화국의 관점에서 형성될 수 있겠다. 이러한 전선을 넘어서 실체적인 보수 개념을 형성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보수의 가치라는 것이 개별적으로 논의되지만 체계적으로 논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 가치의 내면화가 되지 않았다. 공동체가 공통의 가치를 내면화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87년 체제를 보수 진보의 대립 구도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 체제는 이명박 정권 탄생으로 무너졌다. 이제 대립되는 진보와 보수가 없고 386세대가 주류가 됨으로써 그들만의 진보라는 프레임만 있겠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무너뜨려야 할 우상이라고 하겠다, 국민들은 보수 진보의 정치싸움에 넌더리가 나서 정치인 아닌 사람을 선택하여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다. 2008년 광우병 선동 사건은 무너진 진보가 권력쟁취를 위해서 만들어낸 사건인데 정치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을 광장으로 내몰고 광장에 권력을 양도함으로써 홍위병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국회는 사실 정치의 중심점이 아니었고 광장이 정치의 장이 되었다. 정치는 광장에 맡겨두고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정치는 권력이라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깨어지면 광장으로 흘러가면 주워담을 수 없다. 정치권이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하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일하려는 대통령에게 딴지걸면서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 80년대 학번인 386세대 운동권이 정치권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는데 일부는 진보정당으로 갔고, 대부분은 구민주화세력에 합류하여 그들이 후일 민주당을 장악함으로써 진보정치라는 것이 시작되었다./사진=연합뉴스


탄핵 정국은 언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아서 의도된 정변으로 볼 수 있는데, 물론 기획자나 주동자들은 부인하겠지만, 어쨌든 87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음 차례는 진보라는 생각에서 서둘러 대선을 치러서 정권을 잡을 목적으로 진행된 것이 너무 눈에 띈다. 촛불시위를 의도적으로 비교적 얌전하게 진행하여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태극기 집회에 탄핵을 반대하는 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저들의 의도는 무너지고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에 보수진영의 국민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언론의 이야기를 믿고 자신이 선택한 당을 믿고서 외관상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쳐서 직접 자기 돈내고 자기 시간내서 참석하면서도 언론과 정치권에서 모욕과 조롱 심지어는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제 국민들은 이러한 대립의 진영 구도가 허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87년 체제는 이명박 정권의 출발로 해체되었다. 그간 10년간 진보 간판을 들든 홍위병들의 광장정치에 의해서 그럭저럭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었는데 탄핵정변으로 현실이 드러났다. 기성 정치권은 선택해야 한다. 광장정치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보수 진보 놀음을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홍위병들 모두 철수시키고 제대로 정치력을 발휘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

광장정치가 무서워서 벌벌떤다면 그만두고 대선 보다 먼저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 다시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한번 정치의 실상을 몸으로 경험한 국민들의 이 시대의 모순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결을 요구할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이 이에 대해서 답변해 주어야 한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해서 질문한다.

보수?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답변을 요구한다. 이는 탄핵의 결과와는 무관한 과제이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와도 무관한 별개의 과제다. 변화된 상황에서 체제 변화의 상황에서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도대체 보수란 누구이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말인가. /이인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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