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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
5년이 걸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영 방송사가 '서울의 봄'을 앗아간 미세먼지의 주범이 중국이라는 것을 공식 인정하기 까지 보낸 세월이 말이다. 그간 한국은 비겁한 자책론으로 문제의 핵심을 외면해 왔던 터다.
나쁜 일은 단 한 순간의 실수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랫동안의 나태, 무책임, 게으름, 태만, 부주의, 안일함이 누적되고 만성화되어 '차고 넘칠 때'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법이다. 여기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들이 있으나 그 중 '세월호 사건'은 단연 압도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환기하고 싶은 것은 한반도의 '공기문제'다. 5년 전부터 줄기차게 중금속 범벅 중국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외쳐왔다. 초기 분위기는 중국과 무관하다는 비판이 대세였다. 동시에 한국 책임론이 부각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고등어만 희생양('희생어'라고 읽고 싶다)이 돼야 했다.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으나 현실적으론 곤혹스러웠을 언론사는 국영방송인 KBS일 테다. 중국에서야 언론의 역할과 기능, 책임이란 것이 정부의 '나팔수' 내지 '선동기계'에 불과하나 한국의 언론은 지나치리만큼 여러 시나리오를 동시에 고려하는 정무적인 판단자 신세이기 때문이다.
KBS는 오늘(30일)에 이르러서야 용감하게(?) 중국책임론을 직설적으로 보도했다. 그나마 '네이처'라는 신뢰할만한 과학 저널의 발표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네이처에 실린 중국 책임이 크다는 분석은 작년 봄부터 중국-미국-영국 과학자들이 진행하던 연구주제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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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대표하는 국영 방송사가 '서울의 봄'을 앗아간 미세먼지의 주범이 중국이라는 것을 공식 인정하기 까지 보낸 세월은 5년이다. 서울시내가 미세먼지 등으로 뿌옇게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환경문제, 특히 숨쉬기로 부터 예외인 인간은 없다는 점에서 공기는 최고수준의 보편재, 평등재라고 할 수 있다. 최빈민층이건 일국의 재상이건 그들이 마시는 공기는 등가적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시내를 배회하던 미세먼지가 서풍 한번 분다고 바다 건너 일으키는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성층권 가까이, 그러니까 최소한 지상으로부터 10km 높이의 대류권 속을 꽉꽉 채운 중금속 미세먼지가 더 이상 압축될 수 없는 고밀도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대류의 기상현상을 따라 파급(spill-over)되어 흘러 흘러 한반도 상공을 뒤덮게 된다. 누적되고 누적돼 일어난 일이란 뜻이다.
물질은 그저 자연의 이치대로 흘러간다. 지구를 감도는 대기의 흐름은 정한 이치다. 다만 인간은 그 속에 작은 무언가를 얹힐 수 있을 뿐인데 중국은 (의도하진 않았겠으나 무책임하게도) 독약을 뿌린 셈이다. 내막을 보면 환경문제야말로 첨예한 정치적인 이슈일 수 밖에 없다.
'정치적인 이슈'란 의미에는 국가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무게중심이 다른 가치가 충돌, 권위적 배분을 강제해야 수습되는 일이라는 함의가 있다. 지난 10년간 UN의 수장이었던 한국인 사무총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분야는 기후변화에 관한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추구하는 이익이 나라마다 다른 국제 사회의 현실 속에서 가장 큰 공통분모가 이 지점이라는 가치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문제의 현실감은 놓쳤다. 세계의 굴뚝인 중국의 환경 현실과 파급효과에는 무지했거나 외면했다. 그의 바람직했을 문제의식 속에 심각한 환경문제 유발자인 중국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은 특정 한 사람의 가치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억울하지만 그 결과는 전 구성원들이 N분의 1로 나누어 부담한다는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조차 그 결과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인 한, 숨을 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히 운명적이라 부를 일이다.
그렇기에 정책결정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다른 모든 이들보다 고통스런 번민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마땅하다. 어쩌면 이 땅의 비극은 오직 '누리는데만 혈안'인 위인들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원숭이의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니는데 있지 않나 싶다.
그들에게 그깟 '공기의 문제' 정도야 아무것도 아닌 사안일 테니 말이다. 돈과 권력과는 아주 무관해 보이는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로 말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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