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동근 명지대교수 |
어떤 사람의 생산성(소득)은 그가 가진 능력과 운에 의해 결정된다.
능력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선천적인 능력 즉, 유전적 DNA에 의해 정해진다. 소득은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 DNA와 운(luck)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소득의 크고 작음에 '당(當)과 부당(不當)'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인 소득은 운명적으로 그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들 간의 소득의 차이가 작아지려면, 선천적 DNA가 좋은 사람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아야 한다. 통계적으로 말하면 'X= Y+Z'의 관계에서 Y와 Z가 통계적으로 '부(負)의 상관관계'를 가져야 한다. X의 값은 상대적으로 일정범위 내에 들어온다.
현실 세계에서 선천적 DNA(Y)와 운(Z)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인식했다면 이는 물리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장 미제스(Mises)의 '행동인'(homo agens)의 세계에서는 Y와 Z는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선천적 DNA가 좋은 사람일수록 일과성(一過性) 운을 기회로 포착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득은 원천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이때 불평등은 '같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불균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순리다. 불평등에 대해 적의(敵意)를 품을 필요가 없다. 불평등이 불공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분노(anger)를 자극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양극화 프레임(framework)으로 공격한다. 양극화하면 누군가가 전체의 몫을 거의 독식해 나머지 사람들은 빈손이 되는 것이 연상된다. 양극화는 증오를 유발한다는 면에서 경제용어가 아닌 정치용어다. 양극화는 아무데서나 그리고 아무 때나 쓰인다.
2016년 8월 17일 발의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김경수의원 대표발의)의 제안이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
|
|
▲ 세월호참사가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웠기 때문에 일어났다며 사회적 경제법안의 타당성을 내세우는 의원도 있다. 좌파들은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켜 우리 사회의 붕괴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소득의 불평등은 불균등의 문제이다. 이를 적대시하는 것은 사람들의 분노를 촉발하려는 좌파들의 정치용어에 불과하다. /연합뉴스 |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이끌어왔던 신자유주의 성장전략은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성장도 더 이상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있음...사회통합을 유지하는 데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게 함.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임...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가 경제운영원리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 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
이 법안 제안사유는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추동돼 한국사회가 내부적으로부터 붕괴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대학운동권식 현실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초래해 더 이상 사회가 지탱될 수 없다면, 자유를 억압하고 평등을 지향한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냉철해야 할 경제법안 발의에 세월호가 적정한 인용논거가 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합의하기 어려운 사회적 가치를 입법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실효적인지 의구심이 든다. 사회적경제 관련 입법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양극화를 엄밀히 정의하지 않고 악마화 시켰기 때문에 논의는 늘 제 자리 걸음이다. 위의 논리에 따르면,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극화가 됐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면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목가적(牧歌的)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향수에 젖는 것이 정책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추동된 양극화라는 식의 운동권적 지력의 한계에 갇히면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결코 완화될 수 없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