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불황 속에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되고 심지어 자기자신을 버리기까지 하는 노숙인들은 심리적·경제적인 면에서 누구보다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우울증으로 건강을 해치는 이는 물론이고 사업 실패로 생계를 꾸리지 못해 거리로 나앉은 이, 실패 후 대인기피증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 등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숙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에 미디어펜은 재기에 성공해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노숙인들의 사례와 이들의 걱정을 덜어준 정부·지자체 지원정책을 상세히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노숙인들이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를 통해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자립의 의지를 다짐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미디어펜 연중기획-아름다운 동행]- "더불어 사는 세상 함께 만들어요"

[노숙인①]사회적약자에서 자립생활인으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빨리 돈을 벌어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 신용불량도 계속 그대로고 인력시장을 전전했지만 돈을 모으질 못했어요.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 쑥스러웠지만 인사담당자와 면담을 잘 마친 것 같아요."

지난달 23일 서울광장 서편에서 열린 취업취약계층 일자리박람회에 참여한 노숙인 박모(57·남)씨는 구직부스에서 면접을 마친 후 옆으로 나와 담배를 피던 중 일자리 지원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5월 서울시 주최로 열린 취업취약계층 일자리박람회는 예상했던 것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오후2시부터 3시간 동안 열린 박람회에서 일반시민 600여명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 620명이 등록하여, 32개 부스에서 371명이 면접을 봤고 이 중 108명이 채용 합격됐다.

작년 박람회에서 103명이 채용된 것에 이어 연달아 100명 이상 취업 성과를 냈다. 이날 일자리박람회에서 노숙인들이 스스로 일할 의지가 크지 않다는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직원을 구하는 주 참여업체는 (주)빙그레 등 32개 기업으로 모집업종은 시설관리와 운전, 귀농 등 다양했다.

이날 박람회는 1일부터 23일까지 온라인 구인·구직 박람회의 연속선상에서 이를 마무리하는 오프라인 장으로서 구인기업 총 306개사와 3000여명의 참여로 서울광장 서편을 가득 매운 채 열렸다.

박람회 현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숙인들 수백명은 서울광장 한켠에서 업체 정보를 확인한 후 구직표·이력서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증명사진을 찍어 면접에 임했다.

서울시는 증명사진 촬영·이력서 작성·정신상담·신용회복·법률상담 제공 등을 통해 이들의 재기를 측면 지원했다.

   
▲ 사진은 지난달 23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서울시 취업취약계층 일자리박람회 전경. 사회와 동떨어져 생을 포기했던 노숙인들이 서울시의 구체적인 지원과 스스로의 의지로 달라지고 있다./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경우, 지난 2013~2016년간 시예산의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자립하는 노숙인들은 꾸준히 늘어났다.

시는 작년 207명(평균 연봉 759만원)을 공공일자리에서 민간일자리로 연계 전환하여 연간 15억 7100만원 예산을 절감했다.

괄목할만한 것은 지난 3년간 공공일자리(6.5%)보다 민간일자리(52.8%)가 더 빨리 늘어났고, 근속기간이 1년이상인 근로자 비중 또한 계속 증가(16%→26%)했다는 점이다.

민간일자리 직종 또한 일용직에 편중되지 않고 청소·식당·판매 서비스와 경비·운전·시설관리, 제조·생산 등으로 다양했다.

   
▲ 연도별 노숙인 일자리 현황(2013~2016년)./자료=서울시 제공

   
▲ 연도별 노숙인 민간일자리 근속기간(2014~2016년)./자료=서울시 제공

관건은 노숙인들이 취업만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신용회복과 저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밑빠진 독에 물이 모일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10년간 노숙인 신용회복 사업을 해온 옹달샘 드롭인센터의 김동혁 실장은 정부 탕감대상에 들지 않는 노숙인들의 신용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속사정을 살펴보면 신용불량 문제로 노숙하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 실장은 "명의도용으로 인한 채무나 대포폰 사기로 인한 과태료 폭탄은 여전하다"며 "취업 후 월급을 받더라도 급여가 압류되거나 임대주택주소를 살리면 듣도보도 못한 채권자들의 독촉장이 날라온다"면서 이때 노숙인들의 희망이 크게 꺾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실장은 "채무자들의 누락된 채권들을 완벽히 찾고 파산면책을 접수해 실제 면책을 받기까지 6~8개월은 소요된다"며 "노숙인지원에서 일자리와 신용회복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예산의 감소추세에도 자립하는 노숙인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열린 서울시 취업취약계층 일자리박람회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법률상담 받으며 구인부스에서 알아보는 참석자들 모습./사진=미디어펜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와 관련해 근로능력이 미약한 노숙인들이 생계유지가 되도록 공공일자리를 추진하고, 노숙인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해 지속가능한 민간일자리를 발굴하는 '투트랙' 정책을 쓰고 있다.

몸이 불평한 거리노숙인에서 자립의지가 있는 노숙인으로 거듭나도록 단계별 개인별 일자리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임금 일부를 저축토록 하여 자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 윤순용 자활지원과장은 이와 관련해 "자립이 최우선이라는 인식 하에 노숙인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정서함양 관계망 형성 등 자존감을 향상하고 동기부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와 동떨어져 생을 포기했던 노숙인들이 구체적인 지원과 스스로의 의지로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많은 노숙인들이 서울역 광장과 주변 쪽방으로 모이고 있지만 그들의 '자립 희망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