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10년만에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여당과 협상하고, 청년과 대화하고, 언론을 대하는 얕은 발상에서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국정 보이콧’을 선언한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제안한 상임위원장 오찬도 거부했다. 명분은 문 대통령이 공약한 공직자 배제 5대 원칙을 대통령이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것이지만 소통할 기회마저 저버리는 것은 협상력 부재를 의심할 만하다. 

특히 국민의당이 정국을 좌지우지할 캐스팅보트를 쥔 상황에서 한국당이 제1야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 ‘불통’이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가는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는 말처럼 “야당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혔다” “한국당만 협치를 안하려 한다”는 왕따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정우택 당대표 대행이 새 정부 출범 한달을 평가하면서 “국민에게는 쇼(show)통, 야당에게는 불통, 비판세력에게는 먹통, 공무원에게는 호통하는 4통 정부”라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와닿지 않는 것 역시 한국당의 불통 때문이다. 

지난 1~2일 충북 단양에서 개최한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찬회에서 20~30대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대학생들을 연찬회에 초청해 놓고 의원이 호통을 치는 상황이 연출됐다. 

연찬회에 초청된 대학생들이 ‘한국당(새누리당)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한 세비반납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바른정당과 비교하는 등 날선 비판을 가하자 한국당 한 간부의원이 발표자에게 “왜 청년들이 정유라 문제에는 분노하면서, 문준용씨(문재인 대통령 아들) 의혹은 가만히 있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내며 꾸짖어 빈축을 산 것이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청년층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라는 지적을 받은 한국당의 행보는 오로지 그들이 지지층이라고 믿고 있는 극소수에만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지역에서마저 지지율 조사마다 바른정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당의 불통은 당사 출입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한국당은 최근 기자실을 축소해 옮기면서 아예 인터넷매체의 좌석을 없애버렸다. 이전에도 한국당은 신문과 방송 기자들의 좌석에는 각각의 매체별 명패를 붙이면서도 인터넷매체들에게는 개별 명패없이 6개의 공용좌석을 제공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아예 인터넷매체석을 ‘0’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당사에 출입하는 수십개에 달하는 인터넷매체와 불통을 선언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앞으로 제1야당으로서 역할은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낮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노회찬·바른정당 주호영·자유한국당 정우택,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우원식·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정권이 바뀐 뒤 과거 진보야당이 무조건 발목잡기로 진보적이지 못한 모습을 봐온 국민들은 보수야당의 정부 견제활동에 새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보수로서의 성숙함과 유연성으로 정부를 견제해나갈 때 보수당의 미래도 있고, 민주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보수당으로서의 확장성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정치권에서 주도권 잡기에만 골몰하고 있어 아쉽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한국당이 현 정권의 국정운영 방향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서 나오는 정책과 인사발표가 지금까지 보수의 가치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이럴 때 사사건건 발목잡기로 가다가는 자칫 야당으로서의 존재감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이제는 한국당 스스로 ‘뻔한’ 야당의 모습을 버릴 때다.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민주사회에서 안정감 있는 사회발전을 위한 보수의 가치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구태는 버리고 시대에 맞는 보수의 정체성을 갖출 때 당의 존재 가치도 높일 수 있고, 추후 정권교체의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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