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2000년 성매매 합법화…의지로 선택한 직업 세금 내고 노동자 권리 보장
   
▲ 이석원 언론인
'운하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독특한 자영업자 조합이 생겼다. '더 마이 레드 라이트(The My Red Light)'라고 불리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이름에서 이 자영업자 조합의 성격을 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암스테르담 관광 명소 중 하나인 '홍등가'에 자리 잡은 성매매 종사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사창가이다.

유서 깊은 구교회, 네덜란드 국민 화가 렘브란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 드 발렌(De Wallen) 지역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유일하게 공개된 사창가인 암스테르담 홍등가가 있는 곳이다. 암스테르담 시민은 물론이거니와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리는 곳.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관광을 온 사람들도 조금은 쭈뼛거리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0년에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성매매업소는 네덜란드 당국에 정식으로 허가를 낸 후 당당히 세금을 내고, 업소에 속해 있는 성매매 종사자들도 상공회의소에 등록을 한 후 성매매를 통해 번 수익에 대해 일반 직장인과 똑같은 소득세를 낸다.

특히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업소에서 일하는 성매매 종사자들은 '로데 드라드(Rode Draad : 붉은 실)'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가지기도 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질병과 임신에 따른 휴가, 생리 휴업, 그리고 세금 혜택과 연금 가입까지 이룬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업소에 고용된 피고용인 신분의 성매매 종사자에서 자영업자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문을 연 '더 마이 레드 라이트'에는 복수의 성매매 종사자를 고용해 그들을 통해 업소를 운영하는 이른바 '포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업소에서 일하는 성매매 종사자 스스로가 업주이며 피고용인인 것이다. 즉 '더 마이 레드 라이트'는 성매매 종사자 스스로가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 시스템인 것이다.

   
▲ 암스테르담 홍등가 주변을 걸어다니다보면 동네 편의점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 성인용품점이다. 밖에서는 어떤 물건들이 거래되는 지 볼 수 없는 우리와는 달리 오히려 희한하고 괴상하고 선정적인 쇼윈도우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석원

이런 시도는 지난 해 6월부터 본격 시도됐다. 성매매 인권단체가 암스테르담 시당국과 협력해 성매매 종사자들의 보다 나은 권익 보호와 업주에 의한 착취를 원천적으로 소멸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지난 해 6월 29일이지만 암스테르담 시당국이 이미 1년 전부터 이를 위한 타당성 검토나 재정 지원 기반 마련을 위한 사전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시는 네덜란드 라보 은행과 자선기금 ‘스타트 파운데이션’의 지원을 받아 실현 가능성 검토를 끝낸 것으로 AFP 통신 등이 보도한 바도 있다.

암스테르담 홍등가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채 영업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한 일부 업주들의 폭력과 착취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암스테르담 홍등가 성매매 종사자 7000여 명 중 상당수가 동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거나, 동남아사아에서 온 여성들이다.

이들 중에는 공식적인 취업 허가를 가지고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내고 있지만 일부는 취업 허가가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체류 상태에서 성매매를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런 종사자들의 경우 업주의 묵인과 비호를 받으며 몰래 성매매를 하다 보니 그에 따른 불이익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또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트랜스젠더 성매매 종사자나 남성에 의한 동성 간 성매매에 대해서는 네덜란드에서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그들에 대한 정당한 권익 보호가 어려웠다.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더 마이 레드 라이트'는 이들에 대한 투명한 성매매 영업은 물론 그에 따른 소득 명확성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관련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이 특별한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 당시 성매매 종사자 본인들이 프로젝트의 담당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당시 꿈꿨던 것은 '강요나 폭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성매매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직업'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현실이 되고 난 후 '우리 스스로 자영업 개인 사업자의 지위를 얻었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리 스스로의 공간을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더 마이 레드 라이트'를 통해 네덜란드에 정착하는 것도 꿈꾸고 있다. 이전까지는 취업 허가를 통해 일을 한다고 해도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업주들의 지속적인 보살핌과 신원 보증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스스로가 업주이다 보니 영주권을 위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 홍등가의 섹스 쇼 극장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성매매 종사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새로운 영업 개념이 '더 마이 레드 라이트'인 것이다. /사진=이석원

그런 의미에서 '더 마이 레드 라이트'가 확장일로에 서면 스스로들의 신분 보장을 위해서도 암스테르담 홍등가 일각의 불법적인 행위나 위법 행위들이 벌어지는 것을 스스로 제어하려는 노력도 한다. 대마초야 일정한 공간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네덜란드지만, 그 이상의 마약이 홍등가에서 유통되고 복용되는 것도 스스로 막겠다는 의지들이 강하다. 또한 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 요금'이나 도둑질과 같은 행위들도 스스로 컨트롤하려는 노력들도 경주되고 있다.

성매매가 합법적인 것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누구든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길가에 심하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붉은 색 창문 안에 마네킹처럼 서 있고,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 드러난 사진들을 앞세운 '섹스 쇼' 극장이 문을 활짝 열고 있는 풍경은 충격적이기도 한 암스테르담 홍등가.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당당히 노동자의 지위를 얻고,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일정한 자격을 부여받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자기 나라의 몫이라고 해도, 성범죄 발생이 현저히 낮은 네덜란드의 상황은 여러 가지로 주지시키는 바가 있다.

성매매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는 어떤 역사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완벽하게 뿌리 뽑을 수 없는 것이라면 국가와 개인을 위해 성매매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더 마이 레드 라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석원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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