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7일 귀국했다. 미국 출장길에 오른 이후 96일만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귀국했다가 신년 하례식에 참석한 뒤 1월11일 출국해 하와이와 일본을 오가며 요양과 경영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매년 겨울철에는 건강상 이유 등으로 줄곧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3시30분께 전용기편을 통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 입국장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
베이지색 계열의 재킷과 바지를 입은 이 회장은 보좌관의 부축을 받으며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입국한 직후 최지성 부회장 등으로부터 여객선 사고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건강은 괜찮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회장은 팔을 들어보이며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라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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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 귀국/뉴시스 |
이 회장이 96일만에 귀국하면서 향후 삼성그룹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그룹 안팎에선 이 회장이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최근 삼성 내에선 변화와 혁신 수단으로 '마하경영'이 재조명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이 어떠한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마하경영은 이건희 회장이 2006년 3월 사장단 회의에서 "제트기가 음속(1마하=초속 340m)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도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삼성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쏠림현상이 지나쳐 휴대폰 사업을 보완하고 대체할 신사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또 원화강세와 경기회복 지연 등 힘겨운 경제 여건 속에 중국 기업 등 후발 주자들의 무서운 추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IM(IT·모바일) 부문의 실적저조로 전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95% 감소한 8조3100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쳐 근본적인 체질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삼성그룹이 매주 수요일 여는 '수요 사장단 회의'도 삼성의 위기의식은 감지됐다.
삼성 사장단은 올 들어 유독 '혁신', '변화', '창의적 사고'에 초점을 맞춘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1월에는 연세대 김영철 교수로부터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2월에는 카이스트 장세진 교수가 '다시 전략이다'를 주제로, 같은달 동국대 여준상 교수가 '불황, 저성장기의 역발상'에 대해 강연했다. 3월에는 연세대 한순구 교수가 '창의성과 경제학'을, 광운대 이홍 교수가 '창조습관으로 10년 후를 대비하라'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달 들어서도 10일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상상력에 테크놀로지를 입혀라'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회장은 귀국 후 곧 바로 '출근 경영'을 재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고강도 혁신을 주문하며 그룹 내 산적한 현안을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귀국으로 최근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계열사 구조조정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올 초에도 신년사를 통해 대대적인그룹 재편이 이뤄질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신경영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 걸음인 사업도 있다"며 "선두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며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 내자"고 말했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발언 이후 삼성그룹 내 변화의 물살은 한층 거세졌다. 특히 지난달 31일 삼성SDI, 제일모직 합병을 결정한 데 이어, 이틀 만인 지난 2일에는 삼성종합화학, 삼성석유화학 합병을 결의하는 등 숨 가쁘게 진행하고 있다.
또 10~11일에는 삼성증권과 삼성생명이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는 등 지난해 전반적으로 실적이 저조했던 금융 계열사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이 3세 후계 구도와 무관치 않고, 추가적인 사업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삼성의 다음 구조조정 타깃은 삼성물산 등 '건설'로 지목되고 있어 이 회장의 '입'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이산화탄소 누출 사망사건 등 일련의 안전사고와 관련, 강도 높은 후속 조치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회장은 오는 5월30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