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 장기화, 둔해진 삼성의 경쟁력 약화
정치재판 아닌 증거재판주의로 깨끗한 결론 나야
[미디어펜=김영민 산업부장]삼성의 최대 강점인 미래를 보는 눈과 준비하는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다.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이 같은 평가가 속속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견실한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삼성의 경쟁력은 먼저 내다보고 철저히 준비해 앞서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고경영자(CEO)의 미래를 보는 눈,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삼성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재계는 그룹 총수가 구속되거나 실형을 살게 되면 '옥중경영'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은 일시적인 옥중경영으로는 버거울 수 있다. 무한경쟁시대 자칫 시기를 놓치면 순식간에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으로 브랜드 가치 하락은 물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용등급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인스티튜트가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7 글로벌 CSR 순위에서 삼성은 69계단 추락해 89위를 기록했다. 수년간 상위 20~30위권을 유지했던 삼성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신용등급은 지속가능한 성장이 보장되지 못하면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은 무디스 A1, S&P AA-, 피치 A+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실형이 장기화될 경우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5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달 12일부터 본격적인 항소심이 시작되는 가운데 삼성의 총수 부재는 7개월을 넘어섰다. 총수 리스크가 언제 해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삼성은 그야말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 실적과 전문경영인체제로 볼때 삼성의 위기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대한민국 최대기업인 삼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믿음에서 나온다. 현재 삼성의 내부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총수 부재가 가져올 위기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오해일 뿐이다.

현재 삼성의 실적은 반도체가 이끌고 있다. 내년에도 반도체 업황 자체가 좋아 삼성전자의 호실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이 앞으로 1~2년 잘 나간다고 중·장기적인 성장이 담보될까.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성장 유지는 커녕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을 수 있다.

   
▲ 김영민 산업부장
총수의 역할은 바로 과감한 투자와 결정을 통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 이 역할은 전문경영인에게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삼성에게 이 부회장의 장기 공백은 미래의 먹구름이나 다름 없다.

삼성은 미래먹거리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인수합병(M&A) 등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부재는 이러한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줘 중·장기적으로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제 이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이 본격 시작됐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 한 고위관계자는 "항소심에서는 정치적인 재판이 아닌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포브스는 '시험대에 오른 체제: 한국의 정치 개혁은 연출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 부회장 1심을 "공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증거 재판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 부회장의 유죄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재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작용해 묵시적 청탁이 이뤄져 뇌물공여 등 5개 혐의가 유죄로 결론 내려졌다.

1심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이 대가를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증거도 없는 뇌물죄가 전임 대통령과 연관됐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재판으로 전락했다. 증거가 아닌 정황만으로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무너뜨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본격화되는 이 부회장 항소심은 정치적인 잣대가 아닌 증거주의에 입각한 재판을 통해 깨끗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로써 이 부회장의 유무죄가 제대로 밝혀져 삼성의 방황이 종지부를 찍길 기대한다.
[미디어펜=김영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