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보급 영접·기자폭행…자강없이 국격 없다는 힘의 외교 깨달아야
군 복무를 해본 사람들은 한번은 들어봄직한 명언이 있다.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 전투는 상대방의 전투력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이므로 승리할 수도 있고 패배할 수 도 있지만, 경계는 정성과 성실의 문제이므로 실패를 묵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특히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하는 명언도 있다. "업무에 실수를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의전에 실수는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여기서 의전은 '군의 경계'와 마찬가지로 정성과 성실의 문제로 꼽힌다.

기업에서 의전의 중요성은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니 의전이 외교의 전부라는 얘기도 있다. 그럼 한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살펴보자.

   
▲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나고,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난다'고 한다. 그런데, 국빈(國賓)방문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외교의 상실과 빈곤함'을 보여주는 국빈(國貧)으로 변질되며 국격까지 떨어지는 위기다. '힘이 없이 약해보이면 항상 홀대받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깨달은듯 하다. /사진=연합뉴스

외교는 '의전과 말'에서 시작해 '의전과 말'로 끝난다

외교는 '의전에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나고,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난다'고 한다. 그런데, 국빈(國賓)방문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외교의 상실과 빈곤함'을 보여주는 국빈(國貧)으로 변질되며 국격까지 떨어지는 위기다. 사안별로 짚어보자.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도착할 때 영접한 이는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다. 지난해 10월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방중할 때는 왕이 외교부장이 공항에 나갔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중할 때는 양제츠 국무위원이 공항에 나왔다.  참고로 2104년 서울공항에 내린 시진핑 주석은 공항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 내외, 권영세 주 중국대사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둘째, 리커창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한 13일 베이징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에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리커창 총리는 13일 베이징에서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도하면서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세째, 국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늘 식사 자리다. 고대부터 국가간에 중요한 협정을 맺을 때는 (기업끼리 협상을 할 때도 비슷하다)는 식사를 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식사에서는 누가 어디에 앉고 어떤 음식이 나오느냐도 중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 메뉴로 독도 새우가 올라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중국인들은 특히 밥자리를 중시해 식사자리를 판쥐(飯局)라고 부르며, 누군가를 소개하고 싶으면 반드시 식사자리에 참석시킨다. 식사가 모든 만남의 알파와 오메가인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첫날인 13일 저녁과 14일 아침 점심 등 세끼 연속으로 중국측 인사 없이 식사를 해결했다. 청와대는 현지인과 어울려 아침식사를 했고, 점심은 숙소에서 먹으며 정상회담 준비를 했다고 하는데 '외교의 꽃인 오찬 만찬이 없는 국빈방문'이니 '홀대 중의 홀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문재인 대통령의 수행기자단이 중국 경호원 15명에게 얻어맞아 두 명의 사진기자가 다쳤다. 대통령 수행기자단이 이렇게 봉변을 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 공안은 막강한 존재이며, 공안의 지휘를 받는 경호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국 언론을 조롱하고 무시한 이런 행위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격과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환영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측 인사들과 차례로 인사를 하다가 문 대통령이 왕이 부장과 악수를 한 뒤 왕이 부장의 오른쪽 팔을 두 차례 툭툭 쳤다. 그러나, 왕이 부장 역시 문 대통령의 팔을 손으로 툭 쳤다. 이를 두고 "한국 대통령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말이 나왔다. 왕이부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달인으로 외교 의전을 모를리 없다. 그런 왕이 부장이 결례를 범한 것을 '친숙함의 표시'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우리 입장만 생각하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2017년 한중 정상회담은 역사의 수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중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게 한국 수행기자단에 대한 중국의 폭행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당사자간의 문제'로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무리 대통령의 방중성과를 홍보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변하는 언론이 정상회담에서 당했는데, 이런 안이한 대응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씁쓸한 느낌이 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에 대해 '재발 방지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부분도 앞뒤가 바뀌고 왠지 거슬리는 표현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외교에서는 특히 말이 중요한데, 당연히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문책, 그 이후에 재발 방지'의 순서로 표현됐어야 했다. 강경화 장관의 발언은 세밀함(디테일)에서 너무나 안이했으며 아마추어적인 접근이었다.

한중 정상회담이 '홀대논란과 잡음'으로 얼룩지는 것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 즉 문빠들의 반응도 가관이다. 기자 폭행에 대해 "기레기들(기자를 낮춰 부르는 말)은 맞을 짓을 했어. 늘 대통령을 힘들게 하는 언론은 당해도 싸"라는 댓글이 줄줄이 붙는다. 국민을 대변하는 언론이자 우리 국민이 당했는데도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의 영광'만 얘기하는 '외눈박이 생각'은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본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봉변을 당해도 그런 표현을 쓸까.

중국의 민낯-외교의 진실, 자강없이 국격 없다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많은 지식인 특히 대학교수나 언론인들이 글을 쓰면서 "중국의 대국답지 못한 편협한 외교에 우리 정부는 당당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대국답지 못했다. 대국답지 못하게 옹졸하다"는 표현을 썼다.

이러한 대학교수나 언론인의 인식에 너무나 한심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예컨대, 중국에게 '대국답지 못하다'라고 할 때 중국측에서 '그럼 너희는 소국답게 행동하라'고 하면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는 '독립된 주권국가의 관계'이다. 나라간 관계에서 대국이니 소국이니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여러 수 접어주고 기어들어가는 꼴이다. 국가간에는 오로지 국익(國益)만 존재할 뿐이며, 자강하지 못하는 약소국은 늘 설움을 받기 마련이다.

'힘이 없이 약해보이면 항상 홀대받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깨달은듯 하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힘이 곧 정의'이며 '자강없이 독립된 주권도 없다'는 것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12월 중순이다. /김필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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