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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의 런던EYE] 안 팔리는 보수, 팔릴 생각 없는 보수
편집국 기자
2017-12-23 08:07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 그것이 정치인의 명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정치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미디어를 통해 가공되고 편집된 결과물에 의존해 정치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숙명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에게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혹시 어디에 카메라 렌즈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정치적 이해를 요구할지라도 결국 이러한 현실이 극복되기는 요원해보인다. 그러기엔 너무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영국 정치권에서도 이른바 '사진의 정치학'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사례가 최근 있었다. 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버린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 당시 찍힌 두 장의 사진 때문이다.


먼 곳에서 망원렌즈로 찍었을 법한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진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는 그렌펠 타워 근처에서 구조복을 착용한 듯한 한 대원으로부터 무언가 설명을 듣고 있다. 메이 총리는 그렇게 일부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끝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한편 노동당의 당수이자 최근 영국 정치에서 '좌파 포퓰리즘' 광풍의 주인공이기도 한 제레비 코빈은 생존자들을 직접 껴안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 두 장의 사진. 직접 보지 않아도 왠지 머릿속에 그려질 것 같은 그런 두 장의 사진이다. 이 사진 두 장은 영국의 언론과 소셜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지금까지도 확산, 유통되고 있다. 소위 '너무나도 대조되는 두 정치인' 류의 제목이 달려서 말이다. 차갑고 냉정해보이는 현직 총리, 그리고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야당의 대표. 이 둘을 대조한 '짤'은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물론 이 두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많지 않다. 실제 당시 보수당 정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했는지, 반대로 노동당은 그러한 보수당 정권에 맞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사진으로는 그 자세한 내막을 전혀 알 수 없다. 아니, 실제 메이 총리가 생존자나 희생자 유가족들과 어떤 소통을 주고 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은 그저 찰나를 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사진 몇 장, 기사 몇 줄, 그럴듯한 구호 몇 개에 의해 유권자의 표심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현명해보인다. 그런 현실을 그저 탓하고 손가락질만 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정치학계에서는 이러한 정치의 변화상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다양한 주장과 이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눈여겨볼만한 표현은 바로 '정치적 소비' 또는 '정치의 소비화'다. 정치가 마치 거대하 소비시장처럼 움직인다는 개념이다. 유권자의 관심과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그럴듯한 구호나 로고를 만들어 당이나 정치인을 '브랜딩'하는 한편, 각종 기법을 동원해 정책과 정당, 인물의 이미지를 마케팅을 하는 등 소비시장에서 기업이나 생산자가 하는 여러 기술을 정치권에서 급속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이 도태되듯,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반드시 정치적 부도에 직면할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를 감시해야 할 보수정치권은 그야말로 지리멸렬.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국민들의 변화도 비슷한 패턴이다. 과거 정권, 또는 정당과의 관계에서 '유권자'로서 행위했던 국민들이 이제는 정치를 '소비'하고 있다. 돈을 지불하고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처럼 국민들은 자신의 관심 또는 표심을 수단 삼아 정치권에서 내놓는 정책은 물론 정서적 만족감까지 같이 소비하고 있다.


반드시 본인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는 곳에 국한되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어느 정도 소득수준에 도달하면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사치품이나 고급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처럼,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로만 정치권을 바라보지 않는다.


당장 나와는 관련이 없지만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 더 멋있어 보이는 것, 더 '있어 보이는 것'에 표를 던지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인물을 지지하고, 어떤 정당에 투표했느냐를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소비적 행위의 차원에서 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메이 총리와 코빈 노동당 대표의 사진 두 장 역시 정치소비자로서는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그리고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광고와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몇 십 초에 불과한 광고를 보고 제품의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소비자처럼, 국민들은 두 장의 사진을 보고 다음에 있을 '정치 소비', 즉 투표에 대한 의사를 또 바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정치와 국민이 맺는 관계는 마치 기업과 소비자가 맺는 관계처럼 매우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면서 감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정치권 기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달려 있는 배너 광고처럼 '클릭'되고 있으며,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앞다퉈 '정치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또 그것을 국민들은 인터넷 쇼핑을 하듯 돌아다니며 장바구니에 담고(좋아요를 누르고), 퍼나르고(공유를 하고), 리뷰(댓글)를 쓴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반품시킬 수 있다는 편의주의적인 생각도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흐름에 누군가는 이미 최적화된 반면, 누군가는 이러한 흐름 자체를 아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가 구사했던 홍보 기법을 떠올려보자. 그것은 대기업 뺨치는 수준의 치밀함이었고, 연예기획사 저리가라 할 정도의 대담성이었다. 그렇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금도 국정의 상당 부분을 '쇼'에 할애하고 있다. 오죽하면 '쇼통령'이라는 말 마저 나오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 뭐라도 해보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1953년생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변 참모들의 조언을 폭넓게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기저기 알리고 싶어하는 열혈 지지자들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정권의 상당한 버팀목이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보수 정치세력의 사정은 어떠한가. 굳이 여기에 자세히 논할 필요가 있을까. 혹자는 낮은 여론조사 응답률이 이 정부의 높은 지지율의 이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궁금히 여겨야 할 것은, 왜 응답률이 낮은지 근본적 이유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여론조사에서조차 응답하고 싶지 않은 보수 지지층이라면 그들이 투표장에 나올 가능성은 더더욱 적어 보인다.


보수정치권이 국민들로 하여금 소비할 수 있도록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브랜드와 로고를 갖고 마케팅을 해서 관심을 유도할 것인가. 다음에 출시 될 정책은 어떤 광고를 내보낼 것인가. 어쨌든 정치 지형이 소비시장의 그것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현실에 적응하고 또 그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되는 것이 정당의 숙명이자 과제다. 평생 야당을 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쇼를 지적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야당으로서의 책무는 분명히 수행해야 된다. 중요한 외교 일정이 혼밥으로 얼룩진 것을 두고 '13억 중국인과의 조찬'이라고 포장한 청와대를 맹렬히 비판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수도 변화해야 된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이 도태되듯, 변화하지 않는 정당은 반드시 정치적 부도에 직면할 것이다. 정치 소비자의 선택은 점점 더 빨라지고 과감해지고 있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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