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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의 신의칙, 대법원이 하루속히 판단해 주어야
노동시장 양극화 부추겨…중대한 경영상 어려움·노사갈등 해소 기회 삼아야
편집국 기자
2017-12-27 13:54

   
이덩응 경총전무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관계이지만, 노와 사를 벗어나 입법, 행정, 사법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를 노사관계의 정치화, 행정화, 사법화라고들 한다. 기업 안에 노사문제가 발생하면 노사간 자율적으로 풀기보다는 정치권에 호소하고, 정치권은 정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한다. 아니면 법원에 집단 소송을 내기도 한다.


최근 들어 노동조합들이 사법부에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근로시간과 통상임금이다.


근로시간은 쉽게 말해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에다가 노사합의로 할 수 있는 12시간의 연장근로 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가운데 하루를 일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보상을 하더라도 일하게 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1월에 대법원의 공개변론 일정이 잡혔으니 곧 결론이 나올듯 싶다.


통상임금 문제도 4년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명확한 판결을 내렸지만, 노동계는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신의칙'의 해석을 둘러싼 엇갈리는 하급심의 판결과 후속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단적으로 드러났던 사례가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아자동차 사건이다. 법원이 애초의 노사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여파로 회사는 10년만에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최근 하급심 법원은 신의칙 적용에 있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문구의 해석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크다.


경영상해고처럼 회사가 도산할 정도가 돼야 비로소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이름 있는 대기업은 소송에서 신의칙 항변이 인용되지 않아 회사 측이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상당히 많은 공기업, 공공기관도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들 사건 대부분에서 신의칙을 인정치 않고 근로자들의 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예산은 민간 기업과 달리 탄력성이 크기 때문에 회사에 지불여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재정이 결국 국민의 소중한 세금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판부의 판단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노조만 과실을 얻는다면 노동시장의 양극화만 커질 뿐이다.


   
근로시간과 함께 통상임금의 신의칙 문제도 노사갈등을 하루속히 줄이기 위해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 주어야 한다. 대법원 본래 취지에 입각한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기준 제시가 절실하다. /사진=연합뉴스


판결마다 결론이 바뀐다는 점도 문제다. 신의칙에 대한 해석은 특별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판사들이 판단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이는 법관의 의중과 가치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1심과 2심 결과가 엇갈리거나 같은 회사 사건임에도 공장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판결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심지어 통상임금 소송을 '로또 판결'로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초 대법원이 신의칙을 떠올린 배경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노동법에는 협약자치라는 말이 있다. 노사는 동등한 관계에서 자율적으로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고 그 합의는 최대한 존중된다. 당사자인 노사가 여기에 구속됨은 말할 것도 없다.


흔히 임금을 두고 협약 자율의 핵심이라고 한다. 근로자는 회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임금을 마냥 요구할 수 없다. 노사가 함께 가기 위해 일정한 범위에서 임금수준을 정하고 이것을 지키는 것, 이것이 노사관계의 근간인 노사자치와 합의정신이다.


독일, 영국은 연장근로 가산수당도 노사합의로 정한다. 우리나라처럼 기본급을 노사 자치로 정하면서 초과근로수당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례적인 입법례다. 사실 통상임금 범위를 가장 명확히 해석하는 방법은 당초 노사가 합의한 방식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법원이 사후적으로 통상임금에 대해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해석, 적용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옳다. 즉, 신의칙에 대한 판단은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보다는 임금협상으로 형성된 노사간 신뢰와 근로자들의 추가 청구가 얼마나 예상할 수 없는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주요 고려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법원이 '신의'와 '성실'을 말했던 이유도 노사간 약속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감안했기 때문은 아닐까. 대법원 본래 취지에 입각한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기준 제시가 절실하다. 근로시간과 함께 통상임금의 신의칙 문제도 노사갈등을 하루속히 줄이기 위해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 주어야 한다. /이동응 경총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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