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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의 런던EYE] 보수, 작은 정부를 버리자!
큰 정부 vs 작은 정부 프레임서 벗어나 '책임 정부' 추구해야
편집국 기자
2017-12-30 10:00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뭐라고? 지금 제 정신이야?"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정통 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이런 반응을 내놓지 않을까. 작은 정부. 우파라면, 보수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구호다.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공동체 전체의 질서만 유지하되,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자유로운 거래와 계약이 맺어지는 가운데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인류의 삶이 증진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탁월한 주장인가. 


작은정부론이 보수우파의 사상적 핵심(core)이라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달아서도 안 된다. 적어도 18세기 이후 굳혀져 온 정치 이념상의 질서의 틀 안에서 보수가 큰 정부를 추구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보수가 아니거나, 아니면 보수를 모르거나. 


하지만 필자는 오늘 우리 보수가 '작은 정부'를 포기해야 된다고 과감히 말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포기란, 작은정부론의 가치와 개념 자체를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정부'라는 단어 자체를 버리자는 이야기다. 


작은 정부는 '무정부'를 뜻하지 않는다. 작은 정부는 어디까지나 정부의 존재와 역할, 기능의 중요성을 중시한다. 자유로운 사적 질서를 활성화하고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필요하다. 다만, 그러한 역할을 빙자해 사적 영역에 함부로 침투하고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이 잘못됐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정부론의 자세하고 정확한 개념을 대중에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자칫 국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를 추구한다는 것이냐' 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비대하고 방만한 국정 경영에 대해서는 비판적일 수 있어도, 그래도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와 의존이 높은 것이 국민들이다. 누군가가 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그런 가운데 보수가 '작은 정부 vs 큰 정부' 프레임으로 선거에 뛰어들면 대중들에게는 확실히 큰 정부가 더 매력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있다. 뭐라도 해주겠다는 사람과, 국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 중 누구에게 표를 주겠는가. 정부가 나서야 된다고 말하는 정당과, 정부는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정당 중 어디가 더 유리할까. 


   
문재인 정부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재정 확장과 공무원 증원, 그리고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율 인상, 영세업자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연이어 쏟아져 나오는 규제, 규제, 그리고 규제. 이러한 것들은 도무지 훗날을 염두에 둔 정책들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사진=청와대 제공


2005년 보수당 대표직에 오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역시 보수가 작은정부론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위험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정부의 방만성을 개혁하고, 공공 영역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우리 보수의 매우 정당한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헌신적인 직업인이 아닌, 마치 국가에게 부담을 주는 이들인 것처럼 바라보는 위험한 접근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은 우리 보수당으로부터 이러한 안좋은 메시지들을 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많아! 당신들은 게을러! 당신들은 비효율 덩어리야!' 이것은 우리가 실제 공공영역을 바라보는 것과 거리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공영역은 분명 훌륭한 가치입니다."(2005년 전국 소비자 위원회 연설 中)


보수는 그래서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책임 정부(responsible government)'를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이든 신중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고 100년, 200년 뒤를 내다보며 가장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할 줄 아는 책임있는 정부다. 국민의 세금을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 정부. 정말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는 정부.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누구보다도 과감하게 나서겠다는 정부다. 


책임 정부의 반대는? 자연스럽게 '무책임 정부'가 된다. 실제 오늘날 좌파정부가 추구하는 정부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재정 확장과 공무원 증원, 그리고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율 인상, 영세업자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연이어 쏟아져 나오는 규제, 규제, 그리고 규제. 이러한 것들은 도무지 훗날을 염두에 둔 정책들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그런 좌파의 무책임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에서 작은정부-큰정부 대립론은 그 칼날이 다소 무디다. 


이념과 가치는 날것에 해당된다. 음식으로 따지면 원재료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고기와 채소를 쓰더라도 그것을 그릇에 담아 있는 그대로 손님에게 낼 수는 없다. 익히고, 볶고, 간을 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약간의 장식까지 마쳐야 비로소 우리가 즐기고 좋아하는 요리가 된다. 대중이 정치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좋은 재료들이 아니다. 대중들은 잘 차려진 요리를 원한다. 작은 정부는 좋은 재료다. 이것을 책임 정부라는 음식으로 바꿀 책무는 바로 정치인들에게 있다. /윤주진 영국 UCL 정치학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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