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하정우가 하정우와 맞붙었다. 누가 이겼을까. 영화 '신과함께'와 '1987' 이야기다.

지난해 연말 개봉해 해를 넘겨서도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신과함께'와 '1987'이다. 1주일 먼저 개봉한 판타지 영화 '신과함께'는 일찌감치 천만영화 반열에 올라서며 극장가를 장악했고, 묵직한 주제의 '1987'은 문재인 대통령까지 극장을 찾게 만들며 평단과 관객의 좋은 반응 속에 역시 꾸준히 흥행 중이다.

두 영화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배우 하정우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냥 출연도 아니다. 주연이다. 두 영화의 메인 포스터를 보면 '신과함께'에서는 하정우의 이름이 첫번째, '1987'에서는 김윤석에 이어 두번째로 올라 있다.

   
▲ 사진='신과함께', '1987' 포스터


한 배우가 주연한 두 영화가 동시기에 개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상도의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사자인 배우에게는 참 난감한 일이 될 수 있다. 흥행 성적, 영화 또는 연기에 대한 평가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과함께'와 '1987'이 잇따라 극장에 걸리고 나서 하정우 주연 두 영화의 동시기 상영을 문제삼는 이들은 거의 없다. 왜일까.

일단 하정우의 두 영화가 맞붙었으니, 누가 이겼는지 먼저 짚어보자. 관객 동원 면에서는 '신과함께'가 압도적 우세다. 1주일 먼저 개봉한 효과를 떠나 이 영화는 이번 겨울 최고 흥행작이 되며 1천만을 넘어 벌써 1천200만명에 근접했다. '1987'도 400만명을 넘겼으니 흥행 성공인 것은 분명한데, '신과함께'의 관객 증가 속도에는 많이 못미친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판타지 오락 영화인 '신과함께'와 시대의 아픔을 담은 실화 바탕의 '1987'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기술과 소재 측면에서는 한국형 CG의 새 장을 열면서 영화적 상상력의 외연을 확장한 '신과함께'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내용과 메시지 측면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역사적 사건을 치밀하게 재구성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1987'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그렇다면 배우로서의 하정우가 맞대결한 결과는? '신과함께'의 강림 하정우가 이겼을까, '1987'의 최검사 하정우가 이겼을까.

승자는 따로 있다. '신과함께'에서는 영화 홍보 당시 주조연급으로 소개됐던 김동욱이, '1987'에서는 특별출연으로 알려졌던 강동원이 이겼다. 이 두 배우가 하정우보다 연기를 더 빼어나게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두 영화의 결정적 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관객들에게 가장 임팩트있게 다가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 두 영화에서 하정우의 존재감은 주연배우치고는 미미한가. 결코 아니다. 하정우는 주연배우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연기를 펼쳤다. 저승삼차사의 리더로 극의 중심을 잡고 이끌어간 것도, 꼴통 검사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것도, 모두 하정우의 연기로 빛을 발했다. 소위 '대체불가 하정우'다.

오히려 하정우가 있었기에 김동욱, 강동원의 연기가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정우가 영화의 밑그림을 잘 그려놓은 위헤 김동욱과 강동원이 색깔을 잘 칠해 눈에 띄는 그림을 완성한 것처럼.

하정우의 연기력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더 테러 라이브'나 '터널'은 하정우가 아니었으면 탄생하기 힘든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정우처럼 거의 원맨쇼를 펼쳐가며 커다란 스크린을 꽉 채우고 두시간 안팎을 끌고갈 수 있는 배우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하정우가 자신의 역할이 돋보이는 작품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추격자'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는 악역을 맡고도 큰 인기를 얻었고, '암살'은 주연 전지현보다 하와이 피스톨 하정우가 더 기억에 남는다. 김민희와 김태리에게 시선이 쏠렸던 '아가씨'에서도 하정우는 하정우다움으로 영화의 구석구석을 채웠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신과함께'와 '1987'은 모두 하정우의 출연작이라는 점으로 화제가 됐다. 개봉 후 스포트라이트는 김동욱과 강동원에게로 향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천상 배우' 하정우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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