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요즘 여의도에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맥락의 ‘세상’이란 결국 새 정부, 그러니까 정권 교체를 의미한다. 새 정부 산하에서 꾸려진 금융당국은 작년과는 판이한 방향성으로 금융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신년사를 보면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 위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코스닥 활성화, 대출금리 산정체계 검토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신년사를 발표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본위’를 강조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업계의 표정은 복잡하다.

일례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전년도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초대형 투자은행(IB)에 대한 청사진은 올해 신년사에서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금융당국의 말만 믿고 자본확충 등 요건을 맞추기 위해 부심한 증권사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변화다.

명목상 초대형 IB 요건을 맞춘 5대 증권사 중에서 사업의 핵심인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한 곳뿐이다. 실질적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에 휘말린 삼성증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회사들은 본인들이 왜 계속 심사에서 밀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크고 작은 처벌 전례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한국투자증권이라고 해서 완벽한 회사인 건 아니다. 한투의 경우 작년 국내 주식형 펀드 판매에서 27개 증권사 중 1위,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저력을 발휘했지만 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발표한 2017년 펀드판매회사 평가에서는 28개사 중 최하위 수준인 26위에 그쳤다. 

특히 영업점 펀드 상담(66.5%), 판매펀드 수익률(20%), 판매집중도(10%), 사후관리서비스 등 기타(3.5%) 항목에서 점수가 나빴다. 많이 팔긴 했지만 소비자 상담이나 ‘애프터서비스’는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소비자와의 친숙도 측면에서 한국투자증권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모든 회사들이 단기금융업 인가에서는 낙방했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회사들의 입장은 갈린다. KB증권은 자체적으로 인가 신청을 보류하며 자세를 낮췄다. 반면 미래에셋대우는 발행어음 대신 종합투자계좌(IMA)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내외투자 확대를 위해 실시한 증자이고 발행어음과 IMA는 관계당국의 인허가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당장 금융당국의 인가가 필요 없는 분야부터 공략해 나간다는게 뜻으로 해석된다. 

미래에셋대우의 전략 변화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으로부터 ‘괘씸죄’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에서부터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의 관계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는 현실이 입증된다.

애초에 초대형 IB는 지나치게 은행에 편중된 국내 금융업 현실 속에서 증권사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혀 보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증권사와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는 계기를 늘려가다 보면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나와 금융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사업이다. 따지고 보면 초대형 IB 자체가 소비자 친화적인 사업이다.

이전 정부에서 마무리 하지 못한 초대형 IB 사업을 새 정부 금융당국은 ‘증권사 길들이기’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말로는 금융소비자 본위의 정책을 펴겠다면서 정작 금융소비자와 증권사들의 소통창구를 막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언어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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