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직업활동가 양상…노동조합·노동운동 모두에게 외면 설 자리 잃을수도
   
▲ 이동응 경총 전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1차 산업혁명기 근로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보면 하루 근로시간은 평균 16시간에 달했으며, 사사로이 체벌이 가해지기도 했다. 인건비 절약을 위한 아동노동이 증가하면서 전체 근로자의 70% 가량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로 채워졌다.

산업혁명으로 국가 전체의 부는 증가했지만, 같은 시기 영국 맨체스터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17세에 불과했으며, 평균신장 증가율도 점차 감소해 19세기 초반에는 오히려 평균키가 작아지는 등 근로자들의 생존은 큰 위협을 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층 빈민 계급으로 전 국민의 67%에 이르렀던 근로자들은 생존을 위해 집단적으로 사용자를 찾아가 협박하거나 생산기계를 파괴하는 활동을 감행하면서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단결금지법 등을 제정하면서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나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노동조합의 집단행동에 대해 법률적 대응과 병행하여 자율적인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단체교섭이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법 개정으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이 합법화되었는데, 18세기 후반 노동조합의 등장은 생존권 확보를 위한 시대의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은 특권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제조업이 중심이었던 1차 산업혁명기의 노동조합은 산업발전과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두 개의 가치가 조화롭게 병행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했으며, 근로자들도 기업에 예속되어 착취당하는 대상이 아닌 기업과 동등한 파트너가 되었다.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지고 자아실현을 위해 언제든 쉽게 이직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인터넷과 모바일이 주된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군중들이 광장에 모여서 연설을 듣고 결집하여 힘을 과시하는 것은 기록영화에서나 볼 법한 구시대의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상은 노동계의 소위 "총파업"이 직업활동가들만의 행사로 축소되고 그 위력이 약화된 것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고정되어버린 것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드는 최근의 변화 속에서 노와 사 모두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세계의 경쟁에서 뒤처진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1989년 18.6%로 정점을 이뤘지만 해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2004년 이후 10여년 동안 9∼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조직의 위축과 조직률 저하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정부와 사용자의 탄압 때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노동조합의 역할과 활동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18세기 후반에 생산기계를 파괴하고 사용자를 습격했던 방식으로 21세기에도 "투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해고된 회사에 복직하기 위한 고공시위, 대규모 집회와 사업장 점거는 더 이상 대다수 국민과 직장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양 노총은 매년 현장투쟁 강화, 조직활동 강화를 외치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구직자와 취업대기자들에게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고 열렬한 지지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시대 근로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시대 직장인들에게 노동조합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노동조합이 아주 솔직하게 고민하고 근로자들의 변화된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상황 인식이 경직된 활동가 중심의 조직, 대규모 제조업 소속 조합원의 이익 추구로 끝나는 과격한 집회와 시위, 무리한 투쟁 위주의 이념성과 조직 선명성 경쟁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경영자들도 구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로자를 인적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비용으로만 계산해서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능력개발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드는 최근의 변화 속에서 노와 사 모두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차 산업혁명 당시의 1년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단 1초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라도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세계의 경쟁에서 뒤처진다. /이동응 경총 전무
[이동응]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