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포기 vs 미 적대정책 철회' 북미 기싸움 중단시킬 중재안 있어야 성공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청한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특사 조기 파견 주장도 제기됐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달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이후 내달 8일 패럴림픽 개회식 이전에 대북특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서두를 정도로 ‘평창 모멘텀’을 살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에 김여정의 깜짝 방남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새로운 북미관계도 그릴 수 있는 새 장이 열린 것은 사실이다. 좀처럼 만들기 어려운 기회인 것은 맞지만 북한은 “대북 적대정책 포기”, 미국은 “핵 포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정부와 남한의 야권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로 가는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에 북미대화 성사라는 선결 조건을 풀기는 녹록치 않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싸늘하게 대했던 펜스 미국 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북미대화 시기 결정은 북한에 달렸다”고 했지만 이후 WP와 인터뷰에서 “동맹국들이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를 위해 의미있는 단계로 보는 무언가를 하기 전까지 압박이 제거될 수 없다.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며 강화할 것이지만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13일 “일단 만나야 핵을 포기하라는 설득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올해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열기 위해 정의용-맥매스터 한미 안보실장 핫라인을 통해 미국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져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띄울 승부수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청와대는 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이후 이어지는 남북간 대화는 군사 실무회담에서부터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 지난 1월9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결정된 것으로 정부는 이를 통해 우선 남북간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접경지역에서의 상호 비방금지, 서해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의 평화 보장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남북간 협상을 통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지만 앞으로 북미대화를 성사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노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한미공조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더 큰 경제적 후폭풍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부총장(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해 일단 ‘핵동결’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대북제재 철회’를 제안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핵동결과 동시에 미국의 대북제재 철회’가 북미대화의 의제가 되도록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타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설득하면서 북한의 전술과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시기도 조율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대북특사를 보낼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파견되는 대북특사는 김여정 특사에 대한 답방 형식이 되어선 안되고,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경우 의제 조율을 위한 대북특사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북특사 파견도 성급하게 결정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청와대와 정부가 할 일은 일단 북한의 전략‧전술이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지켜봐야 하고, 북한의 참가로 평화올림픽이 된 평창올림픽에 대한 냉철한 결산이 우선되어야 한다. 당장 3월25일부터 미뤄졌던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는 “북한이 지난 2월8일 건군절 열병식을 로우키로 치렀듯이 한미간 물밑 공조로 훈련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청와대와 정부가 구상하는 북미대화와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성사되려면 대북특사 파견은 4월, 남북정상회담은 6월쯤이 적정하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한미합동군사훈련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를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순조롭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할 대북특사가 4월 중 파견될 것이고, 이럴 경우 남북정상회담은 길게 미룰 것 없이 6월13일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과거 사례를 봐도 선거를 앞두고 한미간 엇박자를 내고, 여야가 심하게 갈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남북정상회담을 하더라도 지방선거 이후 날짜를 정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번에 박 교수는 미국 정부와 야당이 주장해온 ‘비핵화 전제’는 대화의 조건이 안되고 대화의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미는 핵 문제 협상을 위해 대화하는 것 아니냐”며 “이것이 현실인데,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 대화하겠다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북한‧북핵 문제가 지나치게 이념화되어왔다”며 “북핵 문제는 협상으로 풀어야 하고, 이제 비핵화는 진보‧보수를 떠나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의 ‘핵동결’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보유’ 주장을 충족시키면서도 미국과 국제사회도 얻는 것이 적지 않다고 말한 박 교수는 “북한이 핵동결만 실천하면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풀어야 할 것이고, 이후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가 이뤄지면 평화협정 체결과 경제적 보상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가운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공연을 마치고 대화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