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영화는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양산했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소생시킨 한 여자의 사랑 일대기는 썩 감동스러웠고, 흐드러지게 핀 해바라기밭의 색감, 빗소리의 아련하고 따스한 정서가 오래도록 관객들의 마음에 남았다.

2004년 개봉한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리메이크했기에 원작과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는 수순. 그 자체로 보면 예쁘고 볼 만한 멜로물이지만 '리메이크'라는 시도를 놓고 봤을 땐 한계가 명확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1년 전 비가 오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 수아(손예진)가 우진(소지섭) 앞에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리메이크작이 성공하기 위해선 원작의 아우라를 비집고 들어갈 색다른 지점 또는 후속작만이 갖는 독창성이 전제돼야 한다. 원작의 성공 신화를 고스란히 답습하려 한다면 그저 다른 배우들로 맛보는 재연 극장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무던히 애썼다. 다소 늘어질 수 있는 영화의 틈틈을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유머로 메웠고, 고창석·이준혁·공효진·박서준 등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카메오들로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좀처럼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없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오롯이 배우들의 힘으로 드라마를 견인한다. 선 굵은 배우들이 나온다니 기대도 되고, 실로 남다른 내공을 자랑하는 소지섭과 손예진이기에 그들의 연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감독은 안일하고 모험 없는 선택을 했다. 각각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클래식'·'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이미 멜로의 정점을 찍었던 톱배우들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멜로 대작의 탄생을 지나치게 의식한 모습이 스쳐 간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잔잔한 정서와 소박한 캐릭터성이 빛나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에 화려한 두 사람이 나와 어수룩한 사랑을 연기하고, 같은 내용의 대사를 소화하니 그저 억지로 구겨 입은 옷처럼 생경하다. 오히려 소지섭과 손예진의 아역을 연기한 이유진과 김현수의 감정선이 놀랍도록 풋풋하고 상쾌하다.

이전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소식 없이 찾아온 장마처럼 가슴 한켠을 진하게 두드렸으나 이젠 이미 예보된 일기도를 펼쳐놓고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비가 오는 시간에만 함께할 수 있는 수아와 우진의 로맨스는 어떤 모습일까. 가슴 절절한 두 남녀의 사랑은 밀레니엄을 한바탕 울려놨으나 14년이 지난 동화적 상상력과 새로울 것 없는 위태로운 작법에 지금의 관객들이 가슴으로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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