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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 신간 '박정희…'…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압도할 자본주의 선언문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기업 총수부터 읽을 책 등장
시장은 만능 아니야…정부-기업 사이의 삼위일체 강조
편집국 기자
2018-03-09 10:30

-'한강의 기적' 다룬 좌승희 박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박정희 관련 서적 연속 서평<상>
 

   
조우석 언론인
기쁜 소식을 전한다. 좌승희(71·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박사의 신간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기파랑 펴냄) 출간은 등장 자체가 굿 뉴스다. 이 책 출간과 함께 외국학문에 각주 달고 해설하기 바빴던 기존 수입경제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학문으로 성큼 탈바꿈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지식사회 내부에선 경하할 일이다.


예전 국문학자 조동일이 <우리 학문의 길>이란 책에서 이런 인상적인 비유를 했다. 우리 자료에 서양이론을 대입하는 식의 학문 행위란 전국체전용이겠지만, 세계에 통하는 보편 성격의 일반이론을 만들어야 그게 정말 올림픽용 학문이란 것이다. 이 책은 그 기준에 썩 근접했다.


조선시대 이후 우린 주자학에 각주 달고 해설하는 훈고학(訓詁學) 전통에 갇혀 살았는데, 그걸 이 책이 깼으니 문화사적 의미마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럼 좌승희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과 뭐가 다를까? 많이 다르다. 기존 경제학이 시장경제이론이라고 해보니 "주어진 자원-부의 최적 분배원리"에 그쳤다. "주어진 자원-부의 창출 원리"엔 크게 미흡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지구촌 인구 중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 배고픔을  해결한 건 4분의 1에 그친다. 3년 전 좌 박사가 자기 책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에서 "경제학은 왜 가난을 방치하는가?"라고 따진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주류경제학은 과학 콤플렉스 탓에 현상을 계량화하고 도표를 그리는 경제과학을 자랑하지만, 막상 공허하다.


   
좌승희 박사의 신간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일테면 박정희 시절의 대한민국이 성장-분배에서 세계 최고였다고 1993년 세계은행이 공인했다. 연평균 9% 넘는 경제성장은 물론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까지 이뤄낸 놀라운 과정(1965~89)이었다. 그걸 자유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이뤘다면, 왜 무엇이 그런 기적을 창출했나를 규명하고 원리를 찾아내는 게 옳다. 그게 실사구시적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경제학은 예나 제나 그런 태도에서 멀다. 그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몽땅 주류경제학의 도그마에 갇힌 탓인데, 도그마는 셋이다. 첫째 주류경제학자들에겐 시장이 하나님이다. 때문에 그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질색하는데, 그걸 박정희가 시도했고 또 여보란 듯 성공했다. 수출진흥책, 중화학공업이야말로 경제학이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해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저들에게 한강의 기적은 단지 두통거리다.


둘째 대부분 경제학자들에게 평등-균형이 신인데, 그런 외눈박이들에게 박정희의 전체 모습이 들어올 리도 없다. 기존 경제학 자체가 "독점자는 없어야 하고 모두 규모가 같고 균형을 이룬 완전경쟁시장이 최상"이라고 가르치는데, 박정희는 거꾸로 간 것이다. 유능한 중소기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만들고, 재벌경제를 만들어 균형을 깼고 이 불균형을 적극 활용해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뤄냈다. 때문에 박정희란 기존 경제학에겐 여전히 미스터리다.


셋째 박정희는 경제자유는 물론 정치자유까지 일부 제약한 게 사실이다. 쿠데타-유신을 한 박정희를 정치학자들이 소화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를 하나님으로 모시는 주류경제학 학자들은 박정희 해석을 하려면 머리에 쥐가 난다. 지금 잘 나가는 중국도 해석 못한다. 왜 옛 시절 한국과 지금의 중국은 경제자유가 좀 부족해도 경제는 발전했던 것일까?


여기에서 좌 박사는 담대한 선언을 한다. 시장을 신으로 보는 주류 경제학 자체가 도그마에 빠졌을 뿐이라는 것, 시장의 힘만으로 성공한 경제는 인류사에서 없다는 것이다. 시장 자체가 본래 불완전하며, 보완할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부터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산업혁명은 물론 20세기 도약을 이룬 한국-대만-싱가포르-중국 역시 시장 중심과 무관한 풍토 즉 정부의 산업육성책을 통해 일어섰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동시에 평등-균형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야말로 좌익적 가치에 얼빠진 짓이다. 경제발전 자체가 시장의 불평등 창출 기능이란 역설 때문에 가능하다는 쪽으로 역발상을 해야 옳다. 어차피 시장이란 노력에 따라 보상을 달리 하는 메카니즘이고, 경제발전이란 것 자체가 불균형 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게 그의 신선한 주창이다.


민주주의가 먼저 이뤄져야 경제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경제개발에도 성공했다는 나라는 거의 없다. 원리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친구가 되기 힘들다. 외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좌승희 경제의 냉철한 논리다.


이런 새로운 발상을 종합하면 무슨 얘기가 될까? 기존 경제학은 한강의 기적은 물론 경제발전 현상 자체를 설명 못하는 불구의 학문이란 뜻이 된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시장-정부-기업 3자의 역할을 동시에 강조하는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을 좌 박사는 개진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발전의 견인차인 기업을 다루지 않는 경제학을 두고 “농경시대 경제학”이라고 비판하는 대목도 썩 볼만하다.


"기존 이론은 자본주의의 발명품인 주식회사 제도가 경제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경제학은 아직도 기업이 없던 농경사회 경제학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주류경제학은 한국 개발연대의 도약이나,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의 산업화, 중국의 성장을 일관성 있게 설명 못하며 그걸 예외적 현상으로 취급한다."(38~39쪽 발췌)


   
박정희 시절의 대한민국이 성장-분배에서 세계 최고였다고 1993년 세계은행이 공인했다. 연평균 9% 넘는 경제성장은 물론 세계 최고의 동반성장까지 이뤄낸 놀라운 과정(1965~89)이었다.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 하이라이트가 그 대목인데, 한국처럼 반기업 정서가 심한 나라에서 시장 만능의 도그마를 깨고 기업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꼽은 이 책의 등장은 그래서 경이롭다. 그걸 좌 박사는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이며,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주식회사 기업이란 보이는 손이 이끄는 상황이라고 새삼 강조한다.


정부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큰 정부론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저자만의 미덕이다. 서구처럼 경제발전의 고전적 방식을 취한 나라가 있고, 한중일처럼 예외적으로 발전한 그룹이 따로 있다는 기왕의 통념을 깬 것도 훌륭하다. 즉 동서 경제발전을 하나의 원리로 꿴 것이고 그래서 경제학의 일반이론이 맞다.


반복하지만 이런 성취는 박정희 개발연대에 대한 실사구시적 접근 때문에 가능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의 모델을 세계에 제시한 경제의 챔피언이 맞으며, 또 한강의 기적이란 한국적 상황을 떠나 언제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부자나라 만들기의 핵심 모델이란 얘기다. 그리고 저자는 박정희 경제개발의 요체를 "기업부국의 패러다임"으로 인상 깊게 명명하고 있다.


개발연대 성공이 서구처럼 부국강병의 제국주의로 가지 않고, 삼성-현대-대우 등 평화적인 대기업군을 낳은 기업부국의 기적적 성취로 이어졌다고 분석한 것이다. 또 하나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의 출간에 기뻐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건 마르크스 경제학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무엇인가? 그건 잘 나가는 이웃, 흥하는 이웃을 때려 눕히자는 원한에 찬 학문이다. 좌승희 경제학은 잘 나가는 이웃, 흥하는 이웃 옆에 있어야 나 또한 잘 나가고 흥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동반성장의 경제학이다. 그점에서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은 공산당 선언문을 압도할 수 있는 무기이며, 자본주의 선언문이라고 이름 붙여야 옳다.


맞다. 이 책은 87년 체제 이후 '박정희 반대로'를 외치며 개발경제 시절의 위대한 성취와 문법을 무시해왔던 못난 우리들에겐 거의 축복에 해당하는 책이다. 지금도 박정희를 원조 적폐라고 손가락질하는 좌익 멍청이들부터 이 책을 읽을 걸 권유한다. 대통령 문재인과 그 주변의 탈레반들도 이 책을 쥐고 공부하길 원한다.


물론 이 책의 한계는 없지 않다. <신 국부론>(2006), <한국 현대사 이해>(2007)<발전경제학의 새 패러다임>(2008)등의 내용과 서술이 모두 비슷비슷하다는 점이다. 독특한 그의 문장의 한계 때문일텐데, 그래서 내 경우 3년 전에 나왔던 책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과 함께 읽어 서로 보완하는 길을 선택했음을 밝혀둔다. 그런 한계에도 좌승희 경제학의 성취는 놀라운 굿 뉴스가 맞다. 그건 다시 한 번 경하하자.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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