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부족은 곧 승객 안전과 직결
민관 "숙련된 조종사 확보 대책 시급"
항공업계가 조종사 인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종사들은 늘어난 운항 횟수에 피로감은 높아지고, 노후한 항공기에 부족한 정비 인력까지 겹쳐 늘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외국인 수급에 따른 내국인 조종사와의 갈등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 차원에서 항공사의 안전성 확보와 조종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조종사 수급난을 겪는 현 상황에서 운항승무원들의 고강도 근무실태에 따른 고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의 대응을 2회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항공사들이 올해 22대 새 항공기를 들여온다고 밝힘에 따라 조종사 수요도 덩달아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항공사가 원하는 경력 조종사는 많지 않다. 늘어나는 항공 수요 만큼 실제 항공기를 타는 기장들의 수가 적어지는 바람에, 조종사들의 과로가 우려되고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관리시스템(ATIS)에 따르면 현재 대한항공은 172대, 아시아나항공은 82대의 항공기(화물기 제외)를 보유하고 있다. LCC 업체의 경우 제주항공이 32대로 가장 많았고, 진에어 25대, 에어부산 23대, 티웨이항공 19대, 이스타항공 18대 순이었다. LCC의 항공기 수는 대형항공사의 10~20%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국제선 분담률은 지난해 26.4%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4년  11.5% △2015년 14.6% △2016년 19.6%로 급속 성장 중이다.

항공업계의 이같은 양적 성장과 달리 조종사 수급 부족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항공기 1대당 조종사 수는 대한항공 17.2명, 아시아나항공 16.8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LCC의 경우 제주항공 14.7명, 진에어 13.3명, 에어부산 13.7명, 티웨이항공 13.5명, 이스타항공 10.8명 등으로 집계됐다. 대형 항공사와 LCC의 조종인력이 항공기당 3∼6명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조종사의 노동실태는 그야말로 위태롭다. 월 평균 80시간, 최대 99시간을 넘는 무리한 운항에 운항승무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대형항공사에서 12년째 근무중인 기장 A씨는 “고강도 근무에 이달에만 이직을 앞둔 조종사들이 10명 이상"이라며 "일정이 계속 차 있어 연간 1000시간인 비행 제한 시간을 거의 채우다시피 하고 있다”고 말했다. LCC 8년차 부기장 B씨는 “중국에서 파격적인 제안으로 인원을 뽑아가면서 대형 항공사뿐 아니라 LCC도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이라며 “기존에 남아있는 인력이 겨우 스케줄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평균 99시간 비행…"살인적 스케쥴"

국토부에 따르면 운항승무원의 연간 비행시간을 유럽연합(EU)의 경우 900시간, 중국은 85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국내항공사들은 이보다 많게는 250시간이나 상회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1050시간, 아시아나항공은 1100시간 수준이다. 

   
▲ 대한항공 승무원들 /사진=대한항공


국내 항공사 조종사들의 월 평균 비행시간은 평균 77시간, 최대 99시간에 달한다. 아시아나항공의 B747과 B777 기종을 운항하는 부기장이 99시간을 운항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스타항공의 B737기종을 모는 기장은 월 최대 99시간, 부기장은 월 85시간을 운행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B737기를 운항하는 기장이 월 평균 49.2시간을 운항해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쉬는 날에도 탑승하기 부지기수다. 날마다 늘어나는 탑승객 수요만큼 조종사 수급이 따라가지 못해 생긴 부작용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0일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휴일을 보장해달라며 청원글을 올렸다. 스케줄 곳곳에 대기 스케줄이 잡혀 있어 가사와 개인사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이 글에 담겼다. 보통 스케쥴러에 의해 운항 일정이 결정되지만 비행이 없는 날에는 돌아가며 운항에 투입되는 식이다.

단거리 운항을 많이 하는 기종의 경우 1년에 1000시간을 채우기 위해 최소 휴일만 쉬면서 비행을 해야 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국적항공사들이 과다한 비행제한시간을 운용하고 있는데도, 국토부가 노사간 문제로 치부하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실제 이같은 우려는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최근 승객이 탑승 중 비행기가 움직이며 엔진 덮개와 탑승계단 충돌로 운항 차질을 겪었다. 에어부산 등 일부 항공사는 승무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운항승무원의 고강도 근무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성도 늘어나고 있다”며 “강력한 안전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대책 마련은 해야겠고.."

운항승무원 근무 여건 논란이 계속되자 국토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8일까지 국적 항공사 8곳에 항공안전감독관을 보내 조종사·객실승무원의 근무·휴식시간 준수 여부 등을 특별점검을 진행했다. 현재 점검 결과를 분석 중이며 빠르면 이달 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늘어나는 항공기에 따라 2020년 약 3000명의 조종사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앞서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한 2단계 항공 조종 인력 양성사업으로 올해까지 매년 140명, 5년 동안 700여명의 조종사를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근무시간 초과에 따른 예외나 보상 규정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승무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당초 운항승무원(기장)의 피로관리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발주 예정이었던 연구용역에 객실승무원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또 항공안전법 규정 자체 개정 추진도 나설 계획이다. 

조종사들 '근무개선·처우 불만' 토로

항공사들도 각자 처한 상황에서 뼈를 깎는 '고육지책'을 감수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경력기장들의 이직·퇴사가 늘면서 외국인 기장을 수급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근무중인 외국인 조종사는 각각 400명, 160명으로 전체 운항승무원 중 15%, 10% 가량을 차지한다. LCC 중에서는 제주항공, 에어부산, 티웨이항공이 외국인 조종사를 채용 중이다. 

일부 조종경험이 미숙한 조종사를 영입해 교육시켜서 기장으로 배출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조종사들이 받는 급여가 내국인조종보다 높기 때문에 내국인 기장 위주로는 '차별 논란'도 거세다. 실제 기내 배치되는 부기장 모두 외국인 편조되면 기장방송을 사무장이 하는 경우도 있다.

신입 조종사가 실제 운항에 나서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더욱 나아가서는 항공업계에서 흔히 있는 '인사 적체'로 기장 대비 승진을 앞둔 부기장들이 진급에 실패하면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입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 데까지는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3년까지 소요되지만 외국인 조종사는 주무부처의 행정절차를 감안하더라도 6개월 이내에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같은 채용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1000시간, 아시아나항공은 350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어야 한다. 

항공사 관계자는 "국내 민항사 조종사들이 이직하는 이유는 외항사의 대우가 좋다기보단 국적사의 대우가 안좋은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종사 내에서도 출신, 경력에 따라 진급 속도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으며 공군의 경우, 진급을 하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나이제한 연령을 높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승무원들 권리 스스로 찾아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 안팎에서는 운항승무원들의 근로 여건에 대한 문제를 국토부가 아닌 고용부에서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승무원들의 권리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승무원들이 부당하게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부당한 취업규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항공사에 소속 중인 운항승무원들은 익명커뮤니티 앱 '블라인드'나 청와대 청원글을 통한 익명 제보로 많이 게재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토부는 소관부처일 뿐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승무원들의 권리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