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박진성 시인이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키운 '문학 권력'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박진성 시인(40)은 23일 오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학 권력과 성폭력은 어떻게 만나는가'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 5일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고은 시인(85)의 성추행을 폭로한 그는 "증언 이후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고 운을 뗐다.
|
 |
|
▲ 사진=미디어펜 DB |
박진성 시인은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문학 권력' 때문"이라며 "늙은 남성 편집자는 젊은 여성 문인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욕망을 볼모로 삼아 스스럼없이 성폭력을 행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문단이라면, 이런 식의 '청탁 구조'라면 해체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발표 지면을 얻고 싶은 젊은 여성 문인들'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그 열망을 이용해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문학 권력들의 폭력'을 탓해야 할까"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사회적 정의와 윤리'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자 자기기만"이라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돼 왔던 모든 폭력들에 반대한다. 이제 그만 하라. 당신들이 만들었던 그 시대를 당신들 스스로 종언하자고 하는 것은 사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박진성 시인은 "당장 그 '송년회'를 빙자한 폭력의 현장부터 없애시길 바란다. 그것만 없애도 많은 성폭력들은 사라질 것이다"라며 "수많은 성폭력의 현장을 수십 년 동안 제공해온 당사자로서 사과하시기 바란다. 그게 '사회적 정의와 윤리'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박진성 시인은 고은 시인이 대학교 강연회 후 뒤풀이 자리에 참석한 3명의 여성 앞에서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3분 넘게 흔들었으며, 자리에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최영미 시인이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발표한 시 '괴물'이 뒤늦게 주목받으며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고은 시인은 아직까지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박진성 시인은 "고은 시인이 직접 답하셔야 할 때다"라며 고은 시인의 입장 표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 다음은 박진성 시인 글 전문
모 시인의 오랜 추행에 대해 증언한 이후 많은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수십 년 씩이나 어떻게 집단적으로 방관할 수 있는지 그 구조가 궁금하다고요.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문학 권력’ 때문입니다. 문학 권력이라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겪은 일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는 2013년 모 출판사와 시집 계약을 하고 연말 송년회에 갔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출판사’의 송년 모임이라 그런지 책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평론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문단 등단 12년 차였고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학지 여름호에 시를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발표’라는 것은 쉽게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문예지의 편집자로부터 ‘채택’이 되어서 그 출판사가 발행하는 잡지에 작품을 게재할 수 있게 되는 것. 저는 해당 출판사에 10년 넘게 시를 게재해달라고 ‘투고’를 했었습니다. 세 번 정도 거절을 당했었습니다. 이유는 “편집 방향과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를 못 써서, 그 출판사 관계자들 말대로 “편집 방향과 맞지 않아서” 시를 실을 수 없었던 것은 저의 부족함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송년회 술집 테이블에서 K 편집위원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고 늦게 도착한 H 시인과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H 시인이 도착한 후, 10분 정도 지나 K 편집위원이 H 시인에게 말하는 거였습니다. “다음 호에 시를 청탁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시를 싣고 싶었던 문예지의 지면을 저 시인은 단 10분만에 받는구나.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깥으로 나와서 담배를 오래 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문으로야 익히 들었던 사실이지만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낙담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문단 권력’은 ‘권력의 시인’과 저런 방식으로 내통하는구나. 참 쉽다. 누구는 그 지면에 발표하고 싶어서 일생을 걸고 시를 쓰는데, 너희들은 참 쉽다. 누군가에겐 ‘10년의 꿈’이 누군가에겐 ‘10분의 만남’이라면 이건 절대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송년회’에만 한정하면 ‘늙은 남성 편집자’들과 ‘젊은 여성 문인들’이 마구 섞인 자리입니다. 전체적으로 다 취한 자리에서 ‘젊은 여성 문인’이 ‘늙은 남성 편집자’의 옆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젊은 여성 문인은 저 H 시인처럼 되고 싶지 않겠습니까? 늙은 남성 편집자는 저 K 평론가처럼 굴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학 권력은 성폭력과 이런 식으로 만납니다. ‘늙은 남성 편집자’는 ‘젊은 여성 문인’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욕망을 볼모로 삼아 스스럼없이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희롱과 추행 더 나아가서는 폭행은 이렇게 공공연하면서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공공연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문학 권력을 지닌 출판사이고 그 ‘공공연한 공간’에 어쩔 수 없이 가서 성폭력을 당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입니다. 이게 수십 년 계속되어 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한 일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발표’를 위해서 많은 시인들이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메이저-마이너’의 구조는 우리 사회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지만 문단 내에서의 ‘메이저’에 대한 열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메이저 출판사에서 여는 송년회는 자체로 ‘메이저 급’이어서 별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위에 말씀드린 ‘성폭력’ 또한 그 중 일부입니다.
이런 식의 문단이라면, 이런 식의 ‘청탁 구조’라면 해체되어야 하는 게 마땅합니다. 우리는 ‘발표 지면을 얻고 싶은 젊은 여성 문인들’을 탓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열망을 이용해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문학 권력들의 폭력’을 탓해야 할까요.
이러한 사실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사회적 정의와 윤리”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자 자기기만입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어 왔던 모든 폭력들에 반대합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당신들이 만들었던 그 시대를 당신들 스스로 종언하자고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당장 그 ‘송년회’를 빙자한 폭력의 현장부터 없애시길 바랍니다. 그것만 없애도 많은 성폭력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수많은 성폭력의 현장을 수십 년 동안 제공해 온 당사자로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사회적 정의와 윤리”입니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