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 “절대 가면을 벗지 말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시위장에서 사측이 접근해올 수 있으니 ‘아무도’ 믿으면 안됩니다.” 

   
▲ 산업부 최주영 기자
4일 오후 7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대한항공 촛불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나오는 얘기다. 그동안 대한항공 오너의 갑질에 참다못해 촛불시위를 열기로 해놓고, 정작 자신의 신분은 결코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웃지못할 ‘해프닝 시위’가 벌어질 참이다. 

이런 익명 시위가 벌어진 데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시위에 참여하는 직원들이 회사를 재직하는 동안 회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겪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일 테고, 두 번째는 과연 이번 시위가 대한항공 직원들이 직접 나서는 시위인지에 대한 참을 가려낼 수 있는 지 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소지의 ‘위험한 시위’일테다.

기자는 이 두가지 경우의 수 중 후자쪽으로 판단된다. 실제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참여한다는 이번 집회에서는 누구 하나 자신이 직원의 신분임을 명백하게 밝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심지어 대한항공에서 운영되는 3개 노동조합도 이번 행사에 '공식적 참여'는 하지 않는다며 집회행위에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한항공 직원이 참석하지 않는 대한항공 집회’가 열리는 셈이다.

더욱이 이번 시위에 대한 신빙성이 없는 부분은 시위에 참여하겠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주장할까보다는 어떻게 자신을 위장하고 감출까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외칠 구호보다는 외부인의 접근을 경계하고 착용할 마스크·가면 등 복장을 지참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 

당초 직원들이 경영층의 문제점을 제보하는 ‘익명 제보방’에서 촛불집회가 계획된 점만 봐도 그렇다. 촛불집회와 같은 집단행동을 누가 최초로 시작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규탄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저 ‘내부세력’과 ‘외부세력’을 가르고 우리편이 아니면 모두 경계의 대상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제보방에서 자신을 ‘현직 직원’이라고 밝힌 한 대한항공 직원은 현재 단톡방의 대다수 인원들을  “대한항공과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현직 직원들보다는 퇴직 및 사직으로 지금은 관련이 없는 사람이거나 대한항공 노동조합보다는 민주노총 등 각종 연대 인원들이 모여 2만여명의 진짜 임직원의 의견을 대변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평화시위라는 점에서 건전한 집회로 자리매김했지만 집회에 참석하는 참가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는 촛불집회의 의미가 과연 있을지 묻고 싶다. 

대한항공이라는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대한항공 시위에 나간다고 말하지 못하고, 가면을 쓴 채로 사내 부조리를 당당하게 외치지 못할 정도라면 말이다.

대한항공 임직원들은 자신이 당당하게 권리를 행사하기 전부터 그 어떤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자신의 권리는 남들과 동등하게 주장하지만 개인적 피해는 보기 싫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매우 높다. '자신의 밥그릇에만 집착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시위를 하려거든 자신의 신분과 대한항공 직원임을 당당히 밝혀야 한다. 설령 어떤 보복이 내려진다해도,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의 갑질, 보복 등의 나쁜 여론만 형성돼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만 커질 뿐, 본인의 정당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박창진 사무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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