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죽어도 CVID는 못한다"는 판단은 썩 훌륭
김정일이 북한 망쳤지만, 김일성은 멀쩡?…그건 착각
   
▲ 조우석 언론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1962년생) 공사의 신간 <3층 서기실의 암호>(기파랑 펴냄)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떴다. 북한 관련 도서는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서점가의 징크스를 깬 기록인데,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북핵 위기가 절정인 지금 출간 타이밍도 좋은데, 북한도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눈치다. 태영호가 출간 기념 기자회견을 한 직후 "인간쓰레기"라며 막말을 퍼부었던 것이 그걸 새삼 보여준다. 책으로만 판단한 내 느낌은 북한에서 60년 가까이 살았던 태영호의 상식과 균형 감각이 이만하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도 확실하다.

서문만 봐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 한국인의 평균 수준을 크게 웃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와 번영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다.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할 책임이 한국에 있다."

<3층 서기실의 암호>가 주목되는 건 아무래도 북핵의 진실이다. "북한으로서는 죽어도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48쪽)이라는 그의 판단 말이다. 왜? 김정은과 핵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름 카리스마를 가졌던 김일성-정일과 달리 김정은에게 핵과 공포정치야말로 체제유지의 기둥인데, 그걸 포기하겠는가?(518쪽)

그런데도 성급하게 남북 화해를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직무유기가 두렵고, 며칠 뒤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지난 30년 미국의 실수를 반복하는 자리가 될까 뒤숭숭한 마음이다. 이 책은 널리 읽힐 가치가 있는데, 실은 북한현대사에 대한 태영호의 인식도 내겐 흥미로웠다.

   
책 뒷부분 "사회주의 북한이 언제부터 기울기 시작했을까"를 다룬 대목이 특히 그러한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 건 아니지만, 눈여겨 볼만 했다. 그는 김정일 집권 이후를 북한이 망조 든 시기로 지목했다. 그때 북한은 봉건사회-노예사회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계기는 1967년 5.25교시 이후라고 태영호는 적시했는데, 그건 생전 황장엽의 판단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64년 대학을 졸업했던 김정일이 노동당에 들어와 취했던 첫 조치가 그것이었는데, 그건 북한식 문화혁명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북한 주민을 핵심-동요-적대 등 3개 계층으로 세분하면서 세상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발표해 김일성 신격화를 밀어붙였다.

미신에 가까운 수령 절대론 속에 세상은 병들어갔는데, 태영호는 그 과정을 "나라 전체가 사기와 허위로 뒤덮였다"(515쪽)고 표현했다. 식량을 400만 톤 생산하고는 800만 톤이라고 뻥 치는 게 일상이 됐다. 당연히 당이 망가졌고, 김일성이 바지저고리로 전락하면서 정일 쪽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그러저런 이유로 김정일이야말로 연구대상이다.

나의 경우 예전부터 북한현대사에서 김일성보다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인물이 김정일이라고 봤다. 즉 어떤 의미에서 현대북한의 창시자는 아들 정일이다. 주체종교의 신정(神政)국가를 만든 주인공, 가장 불길하고 음험한 인물이 김정일이란 뜻이다. 자, 지금부터 판단을 잘해야 한다.

아들이 문제였을 뿐 애비는 괜찮았다는 게 태영호은 물론 북한학의 태두라는 서대숙(전 하와이대 교수)등의 판단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는데 바로 그게 북한 이해의 결정적 잘못이기 때문이다. 태영호의 경우 자신의 성장기인 1970년대까지 평양-지방의 격차는 없었으며, 당시는 "이웃과 웃으며 미래를 그리던 시기"라고 증언했다.

그걸 "공산주의자들의 이상과 열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의 친가와 처가 어른들은 김일성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김일성 시대를 전반적으로 긍정했다. 진실은 그 정반대다. 북한이 크게 망가진 게 바로 그가 태어난 1960년대다.

   
▲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2017년 2월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 '동북아 안보정세 전망과 대한민국의 선택' 국제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북은 GDP(국내총생산)도 아니고 GNP(국민총생산)의 25%를 대남공작비를 포함한 군비로 쓰는 체제였다. 정상적 경제성장은커녕 버티기조차 힘든 구조다. 비효율적인 명령 경제에 더해 경제-군사병진 노선의 한계다. 그래서 1967년 마무리됐어야 할 제1차 7개년경제계획을 완수 못한 채 3년 연장했다. 박정희 시절의 중앙정보부가 그런 북한의 한계를 훤히 내다봤다.

당시 중정은 1969년 말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1인당 소득이 208달러가 되고, 북한은 194달러로 떨어지게 된다는 보고를 그해 여름 박정희 대통령에게 했다. 그런 대역전은 대한민국의 시장경제 원칙과 경제제일주의가 올바른 길이고, 북한의 사회주의 길이 얼마나 잘못인가를 새삼 보여줬다.

실은 1950년대 북한이 잘 나갔다는 것도 착시현상이다. 6.25 뒤인 1954~1960년 공업생산은 연평균 39% 성장했지만, 그건 소련의 경제 지원에 따른 반짝 효과였다. 그렇다면 북한현대사의 진실은 자명하다. 북한은 50~70년대 내내 죽을 쒔고, 그래서 김일성 사망(1994년) 전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직후 고난의 행군도 당연하다.

때문에 북한의 1970년대가 좋았다는 태영호의 회고란 몰락 직전의 잔영에 불과했다. 실은 "북한이 언제부터 기울기 시작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이다. 태어나선 안 될 국가가 북한이며, 김일성에게 "공산주의자들의 이상과 열정"운운하며 호평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지적은 소소한 게 아니며 남북 현대사 이해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긍정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단 이런 지적을 했다고 <3층 서기실의 암호>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망명한지 채 2년이 안 돼 이런 저술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지 않을까? 앞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 공부할 경우 태영호는 훌륭한 교사가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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