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주주권 행사하겠다는 국민연금…본연 역할 위배
국민 노후 책임지는 국민연금…재벌개혁 도구 전락 안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이를 시작으로 정부가 민간기업을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기관이 재벌 개혁의 도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연금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본연의 역할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액은 129조6000억 원으로 비중으로 따지면 20.8%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주식 보유는 국민 연금의 자산 운용을 위한 것으로 기업의 경영권 행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대리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그 자금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임 받은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묵시적 약속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달 3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고 장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의 자산을 운용하는 자금으로 민간 기업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연금으로 민간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면 국민들이 위임한 권리를 넘어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 국민연금관리공단/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경영 악화가 우려돼 국민연금이 제2주주로서 나서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경영 악화를 빌미로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경영에 간섭하게 되면 결국 연금으로 모든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더욱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경영에 개입하게 되면 기업의 경영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어 재계 역시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276개다. 삼성전자(9.2%), SK하이닉스(9.9%), 현대차(8.1%), 네이버(10.6%), LG화학(9.3%), 신한지주(9.6%) 등에서 국민연금은 1대 또는 2대 주주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의 역할은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에 있다”며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에 대한 비난 여론에 휩쓸려 재벌개혁의 수단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민연금은 전문성을 갖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국민연금은 현재 중요한 의사결정을 외부 위원회에 맡기고 있다”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일관성, 전문성, 독립성을 갖고 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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